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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무선 입문

Tags = [ ham ]

몸상태를 회복시키면서, 한 번씩 회사를 갈 상태로 돌아왔는지 테스트를 해본다. 그 테스트 중 하나는, 아마추어무선을 배워보는 것이다. 물론, 일상 복귀는 실패로 결론났다. 다만 후회하진 않는다. 꽤 재밌었다.

근데 왜 굳이 아마추어무선일까? ADHD처럼 오래 일을 하다 작살이 나보니, 변하는 것들은 무용한 것들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다 보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게 됐고, 그러다보니 아날로그 통신이 툭 튀어나왔다. 실제로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유사시 군과 소방에 협력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아마추어무선을 적당히 파고 또 새로운 변하지 않는 기술을 배우게 될 지, 아니면 아마추어무선에 몰입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변하지 않는 것들은 배워서 나쁠 것이 없다.

강의 내용은 크게 어렵진 않았고, 외울 것만 좀 있었다. 해봤자 물리이기 때문. 그냥 들으면서 아하 그렇겠지 했다. 딱 윈드서핑같다. 이론강의에서는 양력이 어떻고 저떻고 하다가, 막상 돛을 잡고 물에 몇 번 빠져 보면 대충 바람의 힘을 느끼면서 몸이 알아서 하기 시작한다. 아마추어무선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이론은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그냥 무전기 사서 삽질해보면서 구르는게 중요할 듯 하다. 물론 윈드서핑은 운동신경과 시행착오의 영역이지만, 무전의 경우는 연구의 영역으로 보인다.

강의 중에 특이했던 점이 있었다. 아마추어무선의 정의 자체에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순수했다. 마치 교수님이 자신의 연구분야에 관심있는 학생이 찾아오면 흥분하듯, 그곳의 강사와 지부장도 신나서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다고 설명하며 본인이 더 행복해했다. 강의 수강 후에는 무전기 구입을 위해 가게에 전화를 걸어 저가형과 고가형의 차이를 물어봤는데, 그랜저와 벤츠를 예로 들면서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는 차이는 많지 않고 그저 브랜드 값이니, 처음 하는 입문자면 그냥 저가형 사라는 답을 들었다. 물론, 난 둘 다 안(못) 몰아봐서 모른다. 오히려 내가 저가형 제품의 안정성에 문제 없는지를 되물어야 했다. 그 답 또한 “거의 차이 없다”였다. 보통은 잘 모르는 녀석이 오면 바가지를 씌울텐데 말이다. 뭔가 다른 세상같았다. 연맹의 지부장도 연맹 직원 몇 명의 월급을 벌어야 한다며 안테나를 손수 만들어 판매하고 계셨다. 뭔가 내가 가는 곳은 그런 열악한 곳들 뿐인 것 같다. 저주받은 취향을 타고 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싫지 않다. 주변에 해로운 사람이 잘 안 꼬여서 좋다. 당장 손에 쥐는 조금 더 두꺼운 월급봉투나 두둑한 통장잔고같은 것보다, 해로운 사람이 꼬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큰 복이다. 서로 지킬 것 지키고 살다 때가 되면 가는게 좋다.

무선 장비를 설치하거나 구입하여 교신을 허가받으면 그곳을 무선국, 무선국을 개설한 사람을 무선종사자라 부른다. 전세계와의 통신을 싸게 하기 위해 인터넷망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파 자체를 그대로 다루는 영역이다. 내 호출부호는 DS1UXY로 나왔다. 발음하기 꽤 편해서 “유니폼 엑스레이 양키”라고 굳이 안써도 될 듯 하다. 물론 X랑 S가 헷깔릴 순 있겠지만, 엑스의 경우 엑- 하고 발성을 막는 구간을 명확히 하면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친구들과도 자주 안 만나고, 말도 많이 안하는 편인데, 무전기 댄다고 할 말이 있을까? 없다. 듣기만 했다. 대부분 중장년층 아저씨들이었다. 요래조래 장비 조율하거나 업그레이드 해보고, 교신 잘되나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인 듯 하다. 대화 내용도 대부분 안부 인사와 함께 현재 신호 상태, 날씨 상태 정도를 공유한다. 간혹 잡음이 심한 무선사에게 해당 내용을 공유하기도 한다. 난 그냥 무슨 간첩마냥 듣고 있기만 한다. 진지하게 탈구글을 성공해본 프라이버시 추구형이 정보를 허공에 쏟아붓는 무선을 접하니 segmentation fault로 멈춰버림. 물론 관련해서 통신보안 수칙을 준수해야 하긴 하다. 내 생각엔 이걸 좀 더 빨리 알아서 할아버지한테 알려줬으면 싶다. 조용한 성격이셨는데, 무료하신건지 방에 들어가 항상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고 계셨다. 나이 70을 넘겨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엑셀로 동네 일처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할아버지가 이걸 했으면 엄청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군인 출신이시기도 했기 때문에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도 해군 출신인데, 무선에 대해 이야기하니 HAM(아마추어무선)을 바로 언급하심. 잘 알고 계셨다. 또 신나서 정보를 쏟아부음. 이거를 한 10년 전에 접한 다음 아버지를 대신 입문시키고 할아버지에게 전파했으면 꽤나 괜찮았을 듯 하다. 물론 지금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