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부터 부정맥 정밀 진단을 위한 루프레코더 삽입을 권유받았다. 72시간 심전도에서도 잡히지 않는, 갑작스런 빈맥과 일시적으로 심장이 멈춘 듯한 감각, 그리고 이와 함께 몸이 마비되는 증상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첫 증상은 2016년. 파산 글에서 언급했던 대학생 때의 그날이다. 두번째는 올해 2월, 그리고 최근엔 5/31. 그날은 기절까지 했다. 다행인 것은, 3번 모두 쉬거나 잠을 자기 위해 누워있다가 발생해서 외상은 없었다. 다행이 아닌 것은, 위급함을 알아차리면 이미 움직이거나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있어도 문제를 알리기가 어렵다.
난 이전엔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최근에 발생했을 당시엔 초기부터 뭔가 심각함을 느꼈다. 119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폰을 어떻게든 잡았지만, 결국 의식을 잃어 신고하지 못했다. 의식까지 잃은건 처음이었다.
의사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 회복하지 못해 못깨어났다면 그대로 죽었을거라고 했다. 근데, 크게 놀랍지 않았다. 그냥 맞는 말이였다. 못깨어나면 죽는거지 뭐. 마치 “저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 안꺼지면 전소됩니다.” 하는 수준의 이야기였다.
일단 루프레코더를 달면, 다음 증상 발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쯤이면 판단의 기로에 선다. 일단 진단이 돼야 치료를 하든 하는데, 진단이 안된 그 기간 동안엔 계속 이도저도 아닌, 죽을지 말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
최근 카페인까지 끊고, 피로를 최소화하며 생활하던 차였다. 야근을 한 지도 꽤 오래 됐다. 사무실 근무일에는 집에만 도착하면 밥먹고 축 늘어져 버린다. 이렇게 계속 있으면 진단만 늦어지고, 시간은 이대로 무기력하게 흘러가겠지. 반대로, 진단을 앞당기려고 모든 일상과 활동에 복귀하자니, 혹시라도 증상을 목격할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기립성저혈압으로 훈련 중에 아주 잠깐 쓰러졌을 때만 해도 목격한 사람들이 꽤 놀란 것 같은데, 이건 그 수준을 뛰어넘는다. 사실을 알면서 불안해할 사람들도 걱정이고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처음 알린건 부모님이 아닌, 서울진도스 운영진 중 한 명이었다. 자기 감정엔 솔직하긴 하지만, 일단 남의 감정에 크게 이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갤럭시워치에서 심박수랑 연동해서 SOS를 세팅하고 있었는데, 차마 부모님께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본 끝에 내린 결정은 1차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보고, 부모님은 그 다음에 생각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나온 답은, 가족들은 이걸 아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일 터지고 나서 알리면 너무 놀라실 것 같다고. 그때 정신을 차렸다. 이 큰 짐을 그 한 명에게 다 지우는 것은 죄다. 마침 다음날 엄마가 내 집에 오기로 해서, 그 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역시나, 혼자 계속 살지 말고 일산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았다. 사실 혼자 사는게 좋지만, 이번엔 거부할 수 없었다. 혼자 있으면, SOS를 받기로 한 사람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사람이 24시간 일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새벽에 그런 일이 발생해서 구조가 불발되고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죄책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이런 책임은, 가족 내에서 해결하는게 맞다. 친구들은 그저 가벼운 조력자의 선에 두는 것이 맞다.
이제 어느정도 방향도 정해졌다. 가능한 빠른 일정으로 루프레코더를 삽입받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로 한 이상, 계속 이 사실을 비밀로 유지할 필요도 없다. 아니, 유지하면 안된다. 비밀로 유지하려 하면 이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에게 꽤 큰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연휴 기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여행 등 즐거운 일정들이 많다. 월요일 오후쯤에 상황을 공유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