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이사갔다. 부산은 처음이 아니었다. 방학 때 종종 부산 용호동의 외할머니 댁에서 한 달 정도씩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 실제로 다닌건 처음이었다. 호전적인 사투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을 느낄 수 없었다. 고작 한 학기를 다니고 졸업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민간 가정으로서의 학교 생활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내가 있던 곳은 공단 근처였다. 부촌은 아니었다. 아버지들이 모두 똑같은 군인이었던 계룡과는 달리, 그 안에서는 빈부격차가 있었다. 엇나가는 학생들도 많고, 사방이 도로에 인접한 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선도부가 할 일이 많았다. 난 입학 당시 사춘기를 크게 겪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순둥했고, 애들한테도 관심이 없어서 담임선생님은 나를 선도부로 배정했다.
아침엔 요일 별 당번으로 일찍 등교해서 복장 및 지각단속 등을 하고, 점심엔 외출을 관리하고, 담을 넘거나 달려서 교문을 탈출하려는 무단외출 시도를 단속했다. 난 설명을 듣고 학교의 헌병이라고 이해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은 눈치없이 3학년 양아치를 잡고 이름을 적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조차 예외는 없었다. 장교가 온다거나, 매일 보는 이가 온다고 해서 신분증 검사를 안하는 헌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은 사실이지만, 위험한 일이 없진 않았다. 한 번은 내가 급한 용무로 복도를 뛰어가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목에 커터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손이 알아서 칼을 쳐서 떨궈버렸고, 다리는 달리던 그대로 달려나가서 그 학생이 누군지도 못보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그래도 그런 사건이 한 번 지나가고 나니, 이후 딱히 나를 건드는 사람은 없어서 평화롭게 다녔다. 나에게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양아치 후배와 눈이 마주친 것 정도가 다였다.
난 그냥 중학교에 선도부를 하기 위해 들어간 로봇같았다. 인간 사이의 깊은 교류라는 것을 애초에 몰랐다. 대화는 그 대화로 끝이었다. 그냥 들은 말에 대답하는 것이 내 대화법이었다. 사실 왜 이런걸 물어보는지도 이해 못했다. 매일 밥을 함께 먹던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좀 미안하다. 난 친구들보다 그날의 수업, 선도부 활동, 선생님이 시키는 일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선생님들은 나를 신뢰했고, 나도 모르는 권력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전학을 온 친구가 나에게로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 의례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밥을 같이 먹고 대화를 나눴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다른 반에 있었기 때문에, 난 점심 시간에 따라오는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하교하면서 교문 밖을 나설 때까지 따라오는 그 친구와 간단한 담소를 나눴다. 그 친구가 무슨 일을 계기로 따돌림을 당했는지, 무슨 일들을 당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본인이 이야기할 리 만무하고, 내가 알아볼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 특별히 생각하거나 느낀 점이 있었다면 분명 포대기에 싸여 어머니 등에 업혔던 기억처럼 뚜렷하게 기억났을텐데 말이다.
내가 평소 함께 밥을 먹던 다른 두 친구는 그 친구가 따라오는걸 막지 않자 나에게 경고했다. 그 친구가 왕따라고. 그렇군.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곧 멀어졌다.
그 왕따 친구는 곧 다시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나에게 편지를 주고 갔는데, 그제서야 그 친구가 왜 나를 따라다녔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다니는 치외법권같은 것이었다. 내가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던 이유는 내 주변이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내 뒤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익숙한 이별을 했다.
그곳에서 본 가난의 모습은,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는 학생의 모습 따위가 아니었다. 불안 속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피해 멀어졌던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 여파를 받는게 두려워서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을 뒤로 한 채 따돌림에 가담하고 있었다. 나아가서, 약해빠진 청소년일 수록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 쎈척을 하며 주변을 피곤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