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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 4. 중산층의 세상

Tags = [ memoir ]

아버지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해 상경했다. 어머니는 골프에 입문해서 3년 만에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다. 아무래도 곧 있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또 이사를 갔다.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간 곳은 해운대였다. 맞았다. 맹모삼천지교였다. 어머니는 골프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더니, 곧 골프연습장을 개업해서 사업을 키워나갔다.

난 해운대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빈부격차가 뭔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해운대는 어느정도 부촌이다. 학생들의 키에서 바로 나타났다. 중학교 때는 내가 큰 키였다. 하지만 해운대에선 특별하지는 않은 키였다. 키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달랐다. 학생들의 얼굴색은 골랐고, 밝았다. 노는 애들은 있어도, 남을 괴롭히는 무리는 없었다. 왕따도 없었다. 걱정이 없는 그곳의 학생들은 순하고 착했다. 즐겁고 평화로운 고교 생활을 누렸다. 선도부는 그저 등교시간에 차와 학생의 길을 분리하며 학생들의 안전에 집중할 뿐이었다. 복장위반이나 지각은 그저 해프닝이었다. 그걸 핑계삼아 선생님은 툴툴거리며 말을 걸고, 학생은 능글맞게 웃어넘기며 쏙 빠져나갔다. 기자와 작가들은 이런 부촌에 악마가 살길 바라며 각종 자극적인 기사와 작품을 내놓지만, 실제로 악마는 빈자들의 도시에 더 많았다.

부촌에 들어간 로봇에겐 곧 체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하고싶은 것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마치 관찰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살았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어차피 인간은 다 죽는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도 중학교 때까지 봐온 것들에 의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지 않는 사람은 그 시기, 나름 배우고 겪은 일들을 종합하며 생각이 참 많았다. 세상은 어리석은 자들이 스스로 만든 하나의 지옥이라 생각했다. 목표의 탄생은 이 가치관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어차피 죽을 인생, 하고싶은거나 실컷 해보자”였다. 흘러다니는 삶은 변하지 않았지만, 변화하는 사이클 사이에 몰입할 것들이 항상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