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에 입시체육을 시작했다. 1학년 때부터 세워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체육대학 진학을 부모님은 내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 가고싶다면 SKY 대학을 가라고 했다. 찾아 찾아 입시요강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 학교인 연세대를 목표로 뒀다. 화, 목은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월, 수, 금은 학원에 가서 훈련을 하고 학교로 돌아와 텅빈 교실에서 야간자율학습 연장전(야야자라고 불렀다)을 했다.
학원의 강사들은 대부분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다들 국가대표 상비군 이상급이었다. 부산대, 동아대 등, 부산의 대부분 대학교들은 육상 기초실기의 비중이 높았다. 심지어 부산대에는 마의 중거리 달리기가 실기 종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죽도록 뛰어다녔다. 일단 3km를 뛴 다음,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20m, 30m, 50m 스프린트를 각각 5-3-2회 실시한 후 다시 50m를 80% 윈드로 뛰고 돌아온 다음, 점프 투성이인 다이나믹 웜업을 한바탕 뛰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본 훈련이 시작됐다. 그리고 서킷, 하체파괴, 인터벌이라는 극혐 3대장이 있었는데, 이 중 하나를 매주 2회 훈련 마무리 전에 진행했다. 한 번은 해변의 모래사장을 뛰었는데, 끝나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해야 했다. 이런걸 하고 사니 세상 무서울게 없어졌다. 어머니가 공부가 더 편하다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목표하던 연세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했다. 사실 이 과정도 우여곡절이 컸다. 안정지원 점수대로부터 무려 40점 정도 떨어지는 수능 언수외(국영수) 표준점수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뭐 당연한 결과였다. 고집이 쎄서, 모르는 수학문제가 있으면 나름의 답을 도출하기 전까진 절대로 답지를 보지 않았다. 한 문제를 3시간 넘게 잡고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에 부모님이 사둔 과학 전집을 읽다가 차원이론에 빠져 엉성한 이해로 4차원에 대한 좌표평면을 그려보겠다고 엉뚱한 삽질을 하면서 시간을 날리기도 했다. 학교 수학선생님에게 가져가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을 받았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네 번째 축은 시간이라는 답을 받았는데, 하필 그 내용을 읽기 전이었어서 “에이 뭔소리야” 하고 또다시 나름의 답을 찾겠다고 난리를 치며 시간을 날렸다. 3차원을 2차원에 그리니까, 그럼 3차원에 4차원을 그리면 되나? 하고 정육면체 위에 그림을 그려대기도 했다. 목표에 맞지 않게 너무 여유를 부려댔다.
각설하고, 그럼 그 40점 떨어지는 점수를 어떻게 만회했냐고? 내가 평소 서울의 입시정보를 입수하던 안양의 체대입시학원에서는 내가 합격 가능하다는 베팅을 했다. 나름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강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통큰 제안을 했다. 이 학원은 이전부터 수능점수에 비해 상향지원을 하는 분야에 전문이었다. 상경해서 전공실기를 다졌다. 결국 실기로 수능 점수를 만회하는데 성공해서 무사히 입학했다. 합격 후 어머니는 학원 원장님께 감사의 표시로 입시학원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사례금으로 드렸다.
내 소식은 부산에서 다니던 입시학원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적당한 수능점수와 함께 합격했다면 그정도 호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아이도 혹시?” 이 사례는 학부모들에게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부산은 여전히 그런 스토리를 많이 팔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홍보물엔, “X등급, 어디어디 합격”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 일색이었다. 그곳은 그런 호재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어 있었다. 그 때는 그 호재를 소화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대표님은 나에게 그곳에 어떤 노하우들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계산이 들어맞았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가의 외제차에 나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최근에 생긴 여자친구를 소개할 뿐이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가 봐도 그건 대놓고 망조 신호였다. 하지만 충언을 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미 대표님은 눈빛이 취해 있었다. 결국 정해진 수순대로 그 학원은 폐업했다. 그곳은 호재를 맞이했을진 몰라도, 만들어내는 법은 몰랐다. 운동은 힘들어도 나름 고3 시절을 즐겁게 보내게 해준 곳이었는데, 안타까웠다.
대조적으로, 안양의 학원은 지금도 성업중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이런 사례가 튀어나왔느냐, 아니면 그 사례를 직접 만들어 냈느냐이다. 난 1학년 때부터 입시정보나 전략은 모두 안양의 학원을 통해 얻었다. 전략의 수학적 근거까지 세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수능 전에 공부할 시간까지 쪼개서 당장 기초실기 시험을 봐도 될 정도로 육상능력과 기초체력을 완성해 놨지만 수능이 끝나고 추가로 유입된 새로운 수강생들과 함께 또다시 지옥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상경했을 땐 체력이 아니라 바로 전공 기술훈련에 들어갔다. 체력은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관리했다. 덕분에 오전에 나가 밤에 돌아오는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더 일찍 나가서 개인적으로 연습할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매일 더 일찍 가서 스스로 곱씹으며 기술훈련을 했다. 게다가 이곳은 이전의 많은 케이스들을 바탕으로 실기시험을 직접 치뤄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 노하우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난 그저 또 하나의 상향지원 합격사례로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사례를 얻은 것이 아니라, 나의 데이터를 얻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취에 대해 그것이 내 성취인가 남의 성취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과, 한 번 한 번의 성취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특히 행운이 클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명확하게 알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