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
라크로스 동아리 주장을 하는 사이 기계공학 복수전공도 시작했다. 수업시간이 너무 좋았다. 밤새며 과제를 해도 행복했다. 동아리의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결국 2016년 2학기에 중앙동아리로 인준하는데 성공하자 마자 긴장이 풀려 몸이 무너졌다. 혈뇨를 보기 시작하더니, 신기능이 떨어졌다. 중도 휴학을 했다. 무너지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학교생활 내내 긴장 상태로 지내는 것도 모자라, 안그래도 늦게 시작한 복수전공을,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인해 초과학기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수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수학과 전공 역학수업과 설계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 와중에 그놈의 양심이 뭐라고, 족보를 보는 것은 스스로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주에 3일씩 밤을 새는건 기본이고, 5일 연속으로 잠을 못자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안 죽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결국 학점관리에 실패하여 학석사 연계과정도 잘렸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고, 중앙동아리 인준 성공으로 주장도 넘겨줄 수 있게 되면서 장기간의 집권(?)으로 인해 하나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동아리 업무를 문서화해서 일종의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주장을 넘겨줬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밤샘을 가능한 피했다.
데드캣 바운스
어차피 학석사 연계도 잘렸겠다, 기계공학과 수업들을 그저 온전히 즐겼다. 수치해석 수업을 통해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붙었다. 그런데 라크로스 경력이 아주 짧은 사람이 다음 주장을 맡게 됐다. 그래서 미국의 라크로스 훈련 드릴 공개본을 수집한 후 라크로스 훈련 계획을 작성하는 웹앱을 만들기로 했다. 그 목표를 가지고 2017년 여름, 코딩야학 2기를 수료했다.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쿼리로 떡칠된 첫 작품이 탄생했다. 아 물론, 안쓴다. 그냥 재미로 만든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취미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중에 나에게 밥을 먹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혼자 계획표를 웹으로 작성해서 사용하기도 하면서, 소소한 프로젝트를 하며 실력을 갖춰나갔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 Exoskeleton 로봇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군사용 근력증강 로봇에 관심이 있었다. 일단 이걸 하려면 대학원 진학은 필수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대학원 생활을 모르므로, 한번 체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KIST 인턴 연구원 채용공고를 보고 콜드메일을 하나 보냈다. 이런걸 연구하고 싶은데, 뭘 준비해 갈까요? 하고. 그 메일을 본 한 박사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니 때가 되면 지원하라고 했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졸업 직전, 인턴 지원 대상 자격이 생겼을 때 연구소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기대에 부풀어 C언어도 미리 공부했다.
졸업 후 인턴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애석하게도, 내 연구 관심사와 관련없는 연구실에 채용되었다. 이름은 지능로봇연구단이지만, 연구실엔 로봇이 없었다. 그당시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연구실의 박사가 해외에 체류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관심있는 다른 박사가 데려갔던 것이다. 설명을 들으니 재미는 있어 보여서 그냥 입사했다. 연구활동을 체험하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좌절
결과는 대실패였다. 유저테스트를 하게 되었는데, 데이터 쿠킹을 유도했다. 정해진 논문의 내용에 들어갈 근거자료가 필요한 것이지, 테스트의 결과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박사들은 아웃라이어로 데이터를 제외한 후, 충분한 설명을 덧붙일 것이라 했지만, 이미 신뢰가 깨진 시점에서 난 시야가 좁아졌다. 내가 실행한 실험이고 내가 낸 통계이므로 책임은 나한테 있다. 나름의 발악으로, 실험설계를 바꾸고, 테스트 시나리오의 task를 바꾸고, 프로그램의 일부 알고리즘까지 개선해서 실제로 유의한 결과를 얻어내서 해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사들은 실제로 데이터를 제외하더라도 충분한 설명을 덧붙이긴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조작하지 않아도 밥벌이와 성과에 크게 문제는 없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혈기왕성한 나는, 사회초년생부터 불의라 생각하는 일에 타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타협은 동아리를 위해 했던걸 마지막으로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았다. 책임질게 없는 개인은 무서웠다. 자르든가!
19년 9월, 인턴 계약이 만료되어 연구소를 나왔다. 난 바로 연구의 꿈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리고 취업활동을 하려던 나에게 다시금 브레이크가 걸렸다. 요로결석이 생긴 것이다.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막연하게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은, 키를 어느 방향으로 둬야 하는지 모르던 참이었다.
갭이어
잠시 푹 쉬는 사이, 연구계에 대한 분노는 줄어들었고,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처럼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할 줄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을 나열했다.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취미로 하고 있던 개발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고작 만들 줄만 아는 나에겐 전공생들이 가진 것들이 없었다. 해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배우기로 했다. 내일배움카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아싸리 모의해커 취업반 과정을 신청했다.
코로나가 창궐했다. 딱 취업반이 시작되는 그 때. 그 시기, 2020년 2월이었다. 인턴을 하며 모아둔 돈을 갉아먹으며 해킹을 배우면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입이 늘었다. 음력설을 지내기 위해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섰는데, 박쥐같이 말라 비틀어진 검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튀어나와 동생을 부여잡더니 다리를 타고 올라가 품에 안겼다.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눈과 코는 어디서 얻어맞아서 부어 있었고, 털도 듬성듬성했다. 뭐 어쩌나. 살려달라는데 살려야지. 데려와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자취방 주인도 예전부터 동물을 키워도 된다고 먼저 이야기했었다. 주인집 강아지가 너무 시끄러워서 일종의 민원방지책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 고양이는 검은 턱시도였는데, 목, 흉부, 복부, 뒷발에 흰 털이 나 있었다. 까치가 생각났다. 이름을 까치로 지었다. 공교롭게도 설연휴에 만났기 때문에 잘 지은게 되었다. 사실 강력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코로나로 할까도 했는데 주변의 만류로 포기했다.
병원비는 월에 50만원씩 날아갔다. 치료와 함께 예방접종들도 빠짐없이 했다. 좀 있으니 피부병이 옮았다. 수의사에게 사람도 치료받았다. 오해는 마라. 사람이 진료를 받은건 아니고, 그냥 고양이 피부병 샴푸를 사람이 써도 효과 있다는 꿀팁 정도 얻었다. 어느정도 건강해진 후 중성화 시술도 이어서 했다. 자연에서 도태된 고양이는 그렇게 이기적 유전자의 미래를 포기당했다. 도심의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시골이었다면 안했을거다. 미안하다. 수컷인데 아직도 애기같은 목소리로 운다. 내시를 만들어 버렸다.
야생 적응기
까치 설날에 찾아온 까치의 활약에 힘입어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결국 취업반 마무리 단계에서 보안계열 취업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보안계열은 초봉이 KIST 인턴보다도 낮다. 하지만 본격적인 면접철 직전에 선수를 치고 입사제의가 온 극초기 스타트업에서는 KIST 인턴을 경력으로 보고 상향된 연봉을 제시했다. 고양이를 키우려면 집도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곳으로 구해야 하고, 사료, 모래 등 부가비용이 발생한다. 스타트업 조기취업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돌고 돌아 옳은 선택이 되었다. 극초기인 만큼, IR도 함께 다니면서 여러 모습들을 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대표님도 사업이 처음이었다. 첫 직원이라 여러모로 잘해줬다. 일은 너무 쉬웠다. 주로 기계공학과에서 배웠던 것들을 이용했다. CAD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적화하고, 3D프린터로 시제품을 출력하고 가공하는 것이 내 주업무였다. 그 외 IR자료 작성, 시장조사, 동영상 편집, 홈페이지 디자인, 개발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동아리 주장을 오래 하며 별의 별 일을 다 해봤기 때문에 엉성한 수준이더라도 내 선에서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시제품의 구조나 기획 등이 정리되며 부품의 성능을 최적화할 회로개발자를 추가로 채용했고, 난 회로개발과, 대표님이 하시던 IR 발표, 정부지원사업 지원서 초안 작성, 세무, 회계를 제외한 모든 일을 했다. 그렇게 해도 하루에 4시간이면 내 일이 끝나버렸다. 주 업무인 시뮬레이션과 기구설계 부분에서 수학적 규칙을 찾으면 바로 코드를 작성해서 자동화해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는 바람에 다른 잡무에 할애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어났다. 지루하고 심심했다.
난 퇴근 후에 해킹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Capture The Flag(CTF) 형식의 가상 해킹게임을 플래이했다. 그러다가 Offensive Security사의 OSCP 자격증 과정을 알게 되었다. 유명 모의해커 자격증이었다. 땄냐고? 놉. 수업만 신나게 듣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는 바람에 취득은 못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9개월 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찰나, 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제 퇴근 후의 여유시간 따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난 진정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기로 결정하고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 고생길이 열렸다.
사이드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사이드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드는 사이드프로젝트이자 사이드비즈니스였다. 실제로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투자는 얼마나 받을 것인지, 지분과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지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투자는 가능한 최소로 받아 내부인의 지분을 높이고 최소 비용으로 빠르게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투자를 가능한 거하게 땡겨서 기업가치 높게 평가받고 수습은 이후에 하려는 요즘 스타트업들과는 좀 달랐다. 원격으로 일하면서 좀 더 정리된 방식으로 어떻게 일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우리 회사보다 훨씬 잘 굴러갔다. 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사람들 간의 온도차, 책임의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쳐갔다. 사이드였기 때문에 과감히 그만뒀다. 라크로스 - 회사 - 사이드프로젝트 순으로 우선순위를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빠진 라크로스 일정으로 체력적 부담이 생기니 그 상황을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