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책을 읽었다. 원래 작년에 샀다. 디스크 때문에 누워서 할 수 있는게 너무 없어서 산 몇 권의 책 중 하나다. 현직 정치인 두 명의 특별기고문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책 내용을 아주 짧게 잘 정리해주는 바람에 이 책의 우선순위는 저 뒤로 밀렸었다.
그럼 이 책은 왜 골랐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나와는 거리가 아주 먼 책이다. 근데 그냥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이과 문과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 박학다식했다. 역사 연표도 다 외우고 있고, 상대성이론까지 설명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총선 결과를 보자마자 윤석열의 계엄령까지 예측했다. 그냥 그렇기만 하면 좋은데… 그런 것들을 내가 모르면 무식하다고 핀잔을 줌. 그래서 내가 주로 쿠사리를 먹는 분야는 단연 인문학 분야였다. 그래서 왜인지 이상하게 이름이 낯익고, 유명한 책이었던 그것을 덥썩 주문했다. 과거 무슨 책인지는 자세히 기억 안나지만, 아버지가 “그것도 안 읽었다고?” 하고 핀잔을 줬던게 있는데, 그게 이 책인가 싶었다. 책을 살 때는 이게 무슨 분야인지도 몰랐다. 정치인들의 기고문이 수록되어 있는걸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정치와 윤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인류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위층의 배부른 고민이다. 읽어보니,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책은 이 책이 아니라 자유론과 정의론이었을 듯 하다. 이 책은 애초에 2009년에 공개됐다. 아버지가 한창 공부하고 교양을 쌓던 시기와 동떨어져 있다.
대학생 때 사회계열 전공이나, 그쪽에 관심이 많던 분들이 쓰던 용어가 대부분 나왔다.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으니, 그 출처가 이 책이었을 듯 하다. 90년대생의 정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균형있는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다분히 보였다. 물론 공리주의에 대해서 글쓴이는 자신의 부정적 견해를 숨기지 못했다. 대놓고 까도 추종자가 적어서 역풍을 맞지 않을 만한 사상이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에서는 어떤 사상을 지지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부분에 가서야 알 수 있었을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나에게 끌리는 사상을 분명 물을 것이다. 여긴 지맘대로 개소리하는 블로그다. 밝히겠다. 난 고작 교양서 하나 읽었다고 거만하게 한 쪽을 지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 책 한 권만 읽었으면 일단 조용히 해야 한다. 무식한 자의 신념 만큼 무서운게 없다.
개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가벼운 지식을 뽐내며 한 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실생활에서 겪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을 지키는 것 뿐이다. 누군가는 트롤리 딜레마 상황에서 한 명을 “죽이는” 것과, 여러명이 죽는 것을 그냥 “지켜보는”,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한다고 했을 때, 한 명을 죽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한 사람은 그 이후의 비난과 살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큰 결심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도덕적 신념이 더 크면 여러 명이 죽도록 그냥 둚으로써 자신의 도덕관을 지킬 것이고,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도덕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 속에서 뭐든 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함”을 선택한 입장의 사람은 반대쪽에게 손에 피묻히기 싫어서 방치했다며 비난하고, “둚”을 선택한 입장의 사람은 반대쪽에게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며 비난할 것이다.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그것이 그 당사자가 판단한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사자도 피해자다. 그 자리에 있지만 않았어도, 그런 가혹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의 피해자인 것이다. 지금 세계의 정치권이 혼란한 이유는, 이런 어리석은 인간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맞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OO한 것 아니야?” 이것이 바로 교만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지금 살아있는 것 조차도 아주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이런 트롤리 딜레마같은 극단적인 케이스를 몇 번이나 겪게 될까. 대부분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은 명확한데, 개인의 욕심과 충돌하는 일이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을 괴롭혔다고 해도, 살인은 살인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었다고 해도, 절도는 절도다. 물론 이렇게 명확한 경우만 있는건 아니다. 취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가식과 거짓부렁이도 그 예다. 이렇게 해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거짓은 거짓이다. 이런 점에서는 내가 칸트의 철학을 따른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거짓은 거짓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나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삶을 살아가는 전략으로 이용한다. 난 내가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이라는 것을 안다. 주변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친한 사람을 늘리는 것보다, 해로운 사람을 주변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해로운 사람이 꼬이는 것은 투자로 따지면 블랙스완과 같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르지만, 걸렸다 하면 작살이 나는 것이다. 그동안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그 블랙스완을 내쫓기 위해, 블랙스완이 좋아하는 것들을 제거한다. 그걸 제거해주는 것은 도덕이다. 블랙스완에 대한 것은 다른 글에서 따로 밝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