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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로스 골리 - 4) 어떻게 세이브하는가

골리의 제1임무는 슛을 막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세이브가 가능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 어떻게 세이브를 할까?

세이브 동작의 기본

세이브는 기본적으로 슛을 막는 것이다. 그럼 슛을 가장 잘 막을 수 있는 유리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슈팅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슈팅은, 슈터의 스틱헤드로부터 시작되어 골대를 향한다. 시작점은 면적이 0인 하나의 점이고, 골대는 가로 세로 180cm의 면적을 가진 평면이다. 그렇다면, 슛이 시작되었을 때, 골대에서 막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슈터의 스틱 헤드 가까이서 막는 것이 좋을까? 쉽다. 슈터의 스틱과 가까워야 더 유리하다. 그렇다면, 슈터의 스틱과 더 가까이서 세이브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익히 들었던 그 동작. 펀치다. 슈터의 스틱 헤드에서 날아오는 공을 향해 마치 펀치하듯이 팔을 뻗으며 공을 잡는다. 이 때 펀치는 정확한 지점에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목표 지점에 빠르게 도달한 후, 멈춰서 공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헤드를 보낸 후 공을 낚아채듯 잡으려 하면 안된다. 낚아채는 세이브는 없다. 공이 포켓에 들어온걸 느끼면서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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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이브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슛을 향해 최단거리로 스틱 헤드를 이동시켜야 한다. 0.01초까지 중요한 시점에서, 다른 동작을 함께하면 치명적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스틱 헤드는 슛을 향해 직선으로 향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의 디테일이 있다. 아랫손도 스틱의 움직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스타일로 세이브를 하는지에 관계없이, 아랫손도 스틱 헤드가 움직이는데 힘을 보태줘야 한다. 그래야 스틱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또한, 중간에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골리는 모든 슛을 세이브하는 사람이 아니다. 좀 더 많은 슛을 막으려는 사람이다. 본전은 골을 허용하는 것이고, 세이브는 골을 넣은 것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슈터가 골대 안을 못맞출까봐 슛을 하지 않는다면, 그 슈터는 쓸모가 있을까? 골대를 못맞추고 턴오버가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도 슛을 하는게 슈터이다. 슈터는 골을 넣으면 신바람이 나고, 슛이 골대를 벗어나면, 그저 체이스를 시도하고 다시 시도할 뿐이다. 골리도 같다. 슈터와의 승부에서 세이브를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음을 준비할 뿐이다. 망설이지 말고 한판 승부 시원하게 하고, 다음을 준비하라.

다음으로, 골리의 몸은 스틱으로 공을 막지 못하더라도 그 뒤에서 공을 한 번 더 막을 수 있도록 스틱이 가는 곳으로 함께 따라가야 한다. 이것을 스텝투볼이라 한다. 하지만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몸을 보내며 스틱을 뻗는 것이 아니라, 스틱을 뻗어서 몸이 딸려가야 한다. 마치 다이빙을 할 때 손을 먼저 뻗듯이 말이다. 왜냐하면, 몸과 스틱을 함께 보내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스틱이 빠르게 목적 지점으로 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따라오는걸 기다려 주느라 스피드가 죽기 때문이다. 스틱을 먼저 보내고 그 방향으로 머리만 함께 기울어 있다면 몸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단, 잊으면 안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체 및 코어에 파워와 안정성이 없으면 헤드를 제아무리 빨리 보내더라도 몸이 딸려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헤드를 빠르게 보내면서 몸통에 가해지는 반작용을 버텨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버티지 못하면 에너지가 세어나가거나 몸통이 회전해 버린다.

나 또한 스틱과 몸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오개념 때문에 꽤나 긴 기간 동안 세이브율이 정체되어 고생했다. 뭔가 잘 안돼서 “아, 맞다. 스텝투볼!” 하고 그걸 개선하려 하면 더더욱 골을 많이 허용하는 악순환이었다.

마지막으로, 항상 공을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야 한다. 공을 시선에서 풀어주는 시점은, 내 포켓 안으로 공이 들어왔다는 것이 확정되는 순간 뿐이다. 눈으로 따라가며, 머리도 함께 공을 향해주면, 스텝투볼이 자동으로 될 것이다.

세이브 스타일

세이브를 하는 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이중 하나는 아주 구식 방법으로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요즘 쓰이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다.

직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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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방법 대로 스틱을 목적 지점으로 회전시키며 움직이되, 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스틱 헤드의 경로를 직선으로 맞추는 방법이다. 여기서, 다시 언급한다. 스틱 헤드를 목적지점으로 보내는 것에 더해, 아랫손을 이용해서 헤드의 움직임에 속도를 더 붙여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윗팔의 힘만으로는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없다. 아랫손이 스틱을 함께 당겨준다면 헤드는 더 빠르게 목적 지점으로 향할 수 있다.

Push & Push 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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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션은 Ted Bergman이라는 코치가 고안해낸 방법이다. 실제로 많은 장점이 있는 자세이다. 스틱 헤드를 공을 향헤 직선으로 보내는데 더해, 오른손과 왼손이 동시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세이브를 할 때 스틱이 보통 가로로 눕는다. 기존 방법의 경우 윗손은 미는 방향으로, 아랫손은 당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반해, 이 움직임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마치 다이빙을 하는 듯한 모션이 자연스럽게 나오며, 하체와 코어의 힘까지 끌어와서 쓸 수 있다. 전신의 에너지를 다 끌어와서 세이브에 집중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리마인드한다. 아랫손도 목적 지점으로 스틱을 빠르게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도록 하라.

무엇을 이용해야 하나

그렇다면, 더 최신인 Push & Push motion을 이용해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각자에게 더 맞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Jake 선수의 경우 1번 보다도 더 전통적인 방법으로 충분한 세이브를 한다. 한국 여자대표팀의 성장을 함께하며 뒤에서 든든하게 골문을 지켜주던 전설적인 골리인 조유리 선수의 경우 1번을 사용한다. 그리고 일본의 골리들 또한 대부분 1번을 사용한다. 나 또한 1번을 사용한다. 그럼 2번은 누가 사용하냐고? 미국의 Ted Bergman 코치에게 배움을 얻은 분들이리라 생각된다.

그럼 1번이 가장 무난하니 1번만 해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해보지도 않고 섵부른 판단을 하지 않길 바란다. 난 2번을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2번으로 넘어가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몸이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는걸 깨닫고 포기한 케이스이다. 허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봤을 때, 분명 장점이 있었다. 이에 더해, 처음부터 스틱을 머리 옆에 가로로 눕힌 자세로 시작해 보기도 했다. 기존 방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세가 이상하다며 훈수를 뒀지만, 실제로는 아래쪽 샷을 막는데 유리했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어나가길 바란다. 혹시 모른다. 라크로스 골리계의 배면뛰기가 나올 수도 있다(배면뛰기는 높이뛰기 기술이다. 기존에 앞으로 넘거나 가위뛰기를 하던 시대에, 발상을 바꿔서 등으로 바를 타고넘도록 개발되었고, 이전의 방법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기록이 좋아졌다)

각 방법의 장단점은 표로 정리해 보겠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마라. 직접 개발해도 좋다. 그것이 틀리더라도, 그걸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세이브의 원리는 앞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구분직선형Push & Push이유
에너지 소비적음많음직선형이라 해도, 결국 회전 동작의 일종. 이건 상체만으로 할 수 있지만, Push & Push는 온몸이 함께해야 함
공에 대한 집중력유리불리기존 방법은 다른 신체 분절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유리
포지셔닝(정면 바라보기)불리유리스틱에 회전 동작이 들어가게 되면 몸이 함께 회전하려 하기 때문.
잠김 현상있음없음스틱을 회전시키면 그 각도에 따라 간혹 팔의 움직임이 잠길 수 있음.
공을 향한 헤드의 속도유리 혹은 비슷불리 혹은 비슷Push & Push를 하게 되면, 스틱 전체를 통째로 옴직이기 때문에 스틱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함. 회전을 시키는 경우,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덜해 헤드의 속도가 빨라짐. 하지만, 팔의 힘이 약한 사람의 경우, Push & Push를 했을 때, 하체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속도가 더 잘 날 수도 있음. 게다가 요즘은 스틱 섀프트의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

8가지 방향을 막기 위한 자세

방향엔 8가지가 있지만, 옆 방향으로는 Stick side와 Middle, Off-stick side로 나눈다. Stick side는 골리가 스틱을 든 방향을 가리키며, Off-stick side는 골리가 스틱을 쥔 쪽의 반대쪽을 의미한다. Middle은 골리의 몸쪽을 뜻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Stick side는 골리에게 더 유리하다. 반대로 Off-stick side는 골리에게 부담이다. 스틱 헤드를 이동시켜야 하는 거리가 더 길 뿐만 아니라, 허리 높이의 경우, 위로 돌릴 지, 아래로 돌릴 지 선택지가 나뉘어버려서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위아래 방향으로는 High, Hip, Low로 나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Bound가 있다. High는 위쪽, Hip은 허리 및 엉덩이 높이, Low는 아랫 방향, 그리고 Bound는 바닥에 튀긴 공을 뜻한다. 그럼 지금부터 각 방향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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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side High, Hip, Middle High, Off-stick High

기본적으로 이 부분들은 필드와 별 다를게 없다. 펀치하여 슈터의 슛을 잡아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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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side, Middle Low, Off-stick Low

낮은 공은 특별하다. 스틱에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골리의 눈과도 가장 멀기 때문이다. 반대로 슈터는 낮은 슛을 했을 때, 좀 벗어나더라도 바닥에 튀기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하다.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했을 때 가장 유리한지이다. 아까 설명했듯이, 볼과 가까워져야 한다. 낮게 오는 공이 바닥에 튀거나, 골리에게 도착하기 전에, 나가서 잡아먹어야 한다. 낮은 공보다도 더 어려운 Bound가 되기 전에 승부를 끝내는게 좋다.

이때, 스틱 헤드만 내리고는 공을 눈에서 떼는 경우가 많다. 그럼 안 된다. 스틱 헤드와 함께 골리의 눈도 항상 공을 향해 바라보고 있어야 하고, 머리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머리가 가면 몸은 따라온다. 말의 고삐만 가지고 말의 온몸을 통제할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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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stick side Hip

과거 스틱을 회전시키며 세이브를 하던 시절엔 이곳을 향해 어느 방향으로 스틱을 돌릴 것인가는 희대의 난제였다. 인체의 구조 상 위쪽으로 돌리면 거리상 가깝지만, 허리를 옆으로 많이 구부려야 하고, 반대로 아래를 통해 가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엄청난 파워로 빠르게 스틱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슛을 향해 스틱 헤드를 직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긴 이후부터 이것은 더이상 난제가 아니다. 어디를 통해 가던지 간에 직선으로 가면 그만이다. 위쪽이 더 편한 상태라면 위쪽을 통해, 아래쪽이 더 편한 상태라면 아래쪽을 통해 스틱 헤드를 슛으로 향하도록 하면 된다. 결정했다면 그냥 실행하고 끝까지 한다. 그것이 맞는지 판단하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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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nd

공을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야 하는 이유이다. 공이 바닥에 닿는 순간, 공에 걸린 회전, 슈터가 슛을 쏜 높이, 바닥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Low로 오는 것처럼 스틱으로 최대한 바운드 지점까지 가까이 가서 바운드 자체를 최대한 막되, 이후 튀어오르는 공을 끝까지 눈과 헤드로 따라가야 한다. 물론 기억하라. 이전 동작을 끝내고 다음을 이어하는 것이지, 중간에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2번 시도하라.


라크로스 골리 - 5) 어떻게 클리어하는가

세이브를 했다면, 다음은 이 공을 무사히 공격 진영으로 넘겨줄 수 있어야 비로소 득점 찬스를 얻어낼 수 있다. 이렇게, 수비 상황에서 공을 빼앗는데 성공한 후 공격 진영으로 공을 전달하는 것을 클리어라고 한다. 클리어가 되지 않는 팀은 아무리 많은 세이브를 해도 이기지 못한다. 물론 드로우를 다 따면… 축하한다. 압승이다. 그렇다면 클리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전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살펴보자.

  1. 당장이라도 패스를 줄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한다. 즉, 스틱을 올리고 있는다.
  2. 우리팀 선수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며 기회를 찾고 패스한다.
  3. 필드로 나가서 수비수들과 함께 클리어를 끝까지 돕는다.

이제부터, 이에 대한 디테일을 잡아 보도록 하겠다.

빠르게 패스를 주는 방법

기회가 났을 때, 상대팀은 그 상황이 오래 유지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따라서, 기회가 났을 때 바로 안정적인 패스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 빠르게 패스를 주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크레이들을 1회 실시해서 공의 위치를 맞춘다.
  2. 목적 지점으로 던진다.

위의 간결한 과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패스와 스틱스킬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필드선수와 다를 바 없이, 다양한 던지기 스킬을 함께 배우고 연습하며, 스틱을 손에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재미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약간의 잡다한 기술이 있다. 손바닥의 감각을 더 살리기 위해 골리 장갑의 손바닥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손바닥은 맨손이기 때문에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스틱과 공의 무게가 더 섬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냄새도 덜 난다.

안정적으로 패스를 주는 방법

평소 패스를 연습할 때, 항상 목표 지점을 정확히 지정해서 그곳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월볼이면 벽에, 패스면 동료의 스틱 헤드에 꽂아주도록 연습한다. 또한 계속 움직이면서 패스 연습을 해야 한다. 움직이는 동료를 향해 어떻게 패스를 잘 줄 수 있는지는, 실제로 움직이며 패스를 주고받아야 알 수 있다. 목표는 높게 가져야 한다. 클리어 상황에서 달리는 동료의 스틱에 공을 넣어주겠다는 각오를 하라.

또한, 패스는 달리는 동료를 향해야 한다. 따라서, 동료가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더 멀리 던져줘야 한다. 지금 보이는 동료를 향해 던지면, 동료는 다시 달리던 것을 멈추고 되돌아가야 한다. 동료가 달리는 속도를 보며, 동료가 갈 곳을 향해 던지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동료가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못따라잡는 편이 낫다. 달리던 속도를 더 올려서 달려가 그라운드볼이라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다. 왜 우린 유독 클리어를 할 때 실수가 많을까? 이유는 스틱을 더 빠르게 휘두르려 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패스를 주는 것은 스틱을 빠르게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고 던지고자 판단하는 것을 빠르게 하라는 뜻한다. 이것이 안되기 때문에, 남은 시간 안에 패스를 빠르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따라서, 기회를 포착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에 더해, 빠르게 패스를 주기 위한 1,2의 과정 중, 1번의 경우는 더 빠르게 해볼 수 있다. 1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크레이들 연습을 해서 몸에 익힌 후, 판단도 빠르게 한다면, 클리어 패스에 걸리는 시간은 충분히 단축될 것이다. 이로부터 여유를 가지고 스틱을 평소처럼 휘두르면 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패스와 크레이들과 같은 기본기를 충분히 반복숙달한다면, 패스와 크레이들은 어떤 절차를 따르는 것을 머리 속으로 생각할 필요 없이, 몸에서 알아서 나올 것이다. 단지 “저기로 던져야지” 하는 생각만 해도 몸이 알아서 움직일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회를 포착하고 판단하는 일은 어떻게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경험이다. 그리고 가장 안전하고 부담없는 장은 팀 훈련이다. 클리어 전술 훈련도 하지만, 실전과 같은 상황에서 클리어를 할 기회가 종종 있다. 이 때, 이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기본적인 패스캐치, 크레이들 실력을 날카롭게 가다듬고 훈련에 매진하라. 실제 경기에 가서도, 경험들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갈수록 이 부분은 빨라질 것이다. 초조해할 필요 없이, 매 경험을 즐기고, 경기나 훈련이 끝나면 그날의 훈련 내용을 정리하며 기억에 남겨라.

기회를 파악하는 순서

1️⃣ 2️⃣ 3️⃣

4️⃣ ❌ 5️⃣

4️⃣ 🔻 5️⃣

  1. 미드필더들이 있는 곳(앞쪽 멀리)을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르게 보면서 파악한 후, 좋은 기회가 있다면 패스한다.
  2. 줄 곳이 없다면 가까운 양 옆의 수비수들을 빠르게 보며 기회가 있는지 확인하고, 기회가 있다면 패스한다.

💡 여기서, X표시를 한 지점으로는 패스하지 않도록 한다. 실패하게 되면 바로 상대편에게 득점 찬스를 내주게 된다.

  1. 골대 뒤로 돌아가서 다시 1,2를 진행한다.
  2. 골서클에서 더이상 있을 수 없는 경우, 골서클에서 상대팀 공격수가 가장 적은 방향으로 나와서 1,2를 반복하면서, 수비수들의 최후방에서 발맞추며 앞으로 전진한다.
  3. 상대 선수 중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온다면, 분명 어딘가 기회가 있다는 신호이다. 빠르게 다시 주변을 살피고, 기회가 있다면 패스한다.

5번에서 패스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경우,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경기는 그 때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답을 정해 두고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배수진 전략은 위험한 발상이다. 팀 분위기를 흐리고, 갈등을 일으키고, 패배를 불러올 것이다.

먼저, 1대 1 마킹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직접 따돌리면서 주변에서 기회를 찾고 패스를 시도한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골서클 근처라면, 상대편 마킹을 골서클을 활용해서 떼어낼 수도 있다. 골서클 안으로 공을 다시 넣은 후 들어가서 다시 5초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골이 들어가거나 가로채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1대 1 마킹을 감당할 자신이 영 없다면, 우리 팀에게 유리한 필드를 향해 아주 멀리 던져서, 미드필더나 공격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성공하면 감사하고, 실패하더라도 수비수가 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전략이 되면 안된다. 우린 1대 1 마킹을 이겨낼 수 있는 골리가 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라크로스 골리 - 6) 어디에 위치하는가

골리는 어디에 서서 세이브를 해야 할까? 이것을 포지셔닝이라 한다. 포지셔닝은 세이브의 반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어보다도 늦게 배치한 이유는, 골리를 당장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을 앞에 배치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부터 세이브를 더 잘하기 위해 어떻게 포지셔닝을 하는지 알아보자.

나는 어디에 있는가

포지셔닝을 하기에 앞서, 본인의 위치가 어디인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골리는 보통 특정 범위 이내로 움직인다. 따라서 골대를 스틱으로 툭툭 치면서 본인의 위치를 파악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당장 모르겠더라도 습관적으로 쳐라.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며 스틱으로 골대만 치고도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골리가 가장 커보이는 위치

포지셔닝의 기본은, 골리 자신이 가장 커보이는 위치에 가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격수 입장에서 골리가 언제 가장 커보이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좀 더 쉬운 방법을 먼저 소개하겠다. 공을 몸이 정면으로 바라보게 항상 서는 것이다. 처음엔 후술할 반원 위에서 시작해 보고, 조금씩 앞뒤로 거리를 조절해 보며 가장 잘 막을 수 있는 위치를 찾아보도록 한다.

반원

골리들이 골대 밑 골라인에 딱 서있지 않고 약간 앞으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좀 더 넓은 면적을 몸으로 가리기 위함이다. 그들은 그 앞에서 반원을 그리며 공격수에게 가장 커보이는 위치를 사수한다. 반원의 크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렵지 않다. 골대의 양 끝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그리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본인에게 맞는 반원의 크기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많은 선수를 상대해 보면서, 어느 위치가 본인에게 유리한지 찾아가길 바란다. 공격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앞에 세워두고 골대를 보며 좋은 위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좋다.

반원을 그렸다면, 그중 어느 위치에 서야 할까? 자신의 몸이 공을 든 공격수 입장에서 골대 밖으로 튀어나가서 낭비되는 부분이 없는 위치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려울 것이다. 당장 해볼 수 있는 것을 소개하자면, 골라인 중심에서 상대편 공격수 사이에 선을 그어서 그 선 위에 서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거기서 약간의 유연성을 가지고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출처: https://laxgoalierat.com/the-basics-of-making-a-save/

스텝

경기 중에 포지셔닝을 해야 하는 위치는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골리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이렇게 골서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스텝이라 한다. 스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스몰스텝과 빅스텝이다.

스몰 스텝

말 그대로 조금 움직일 때를 뜻한다. 공을 가진 공격수의 이동에 따라, 포지셔닝을 고쳐잡기 위해 이동할 때 사용한다. 스몰 스텝은 또다시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잔발을 치듯 계속 움직이며 실시간으로 포지셔닝하는 방법과, 5개 지점을 정해 두고 공격수가 일정 범위 이상 벗어날 때만 움직이는 방법이 있다. 각 방법은 장단점이 각각 존재한다. 따라서 본인에게 맞는 것을 이용하면 된다.

잔발을 치는 방법은, 실시간으로 계속 포지셔닝을 수정하며 완벽을 가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연습량이 충분히 받쳐준다면 포지셔닝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잔발을 치고 있기 때문에 공에 반응할 때 속도 또한 좋다. 이 방법은 조유리 선수가 사용했다.

5개 지점을 정해두는 방법은, 위의 그림자료에서 지정한 5개 지점들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공격수가 자신의 두 무릎 사이에서 벗어날 때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이 방법은 잔발을 치는 방법에 비해 이동이 덜하다. 따라서 공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연습량이 덜해도, 지점 자체가 적기 때문에 포지셔닝을 꽤 괜찮게 진행할 수 있다.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덜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 이 방법은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하며, Jake선수가 사용하며 클리닉에서 소개해 줬다.

빅 스텝

빅 스텝은, 패스가 일어나는 등의 이유로 한 번에 많은 거리를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골리에게는 리스크가 큰 동작이다. 거리가 긴 만큼 포지셔닝에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공격수 또한 보통 가까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다, 당장이라도 슛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 스텝을 밟으면서도 각종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보통의 빅 스텝에서 무너지기 쉬운 것은 포지셔닝이다. 첫 발에서 목적지를 향해 몸을 던져버리는 순간, 더이상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발에 걸쳐서 포지셔닝을 진행한다. 먼저, 골라인의 중앙을 뒷발로 밟고 슈터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 시점에서 골리는 슈터를 향해 좌우 방향 포지셔닝을 완료하게 된다. 다음은 그 슈터를 향해 한 발을 내딛는다. 이렇게 되면 슈터가 슛을 하더라도, 포지셔닝이 매우 빨리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세이브를 하는데 지장이 없게 된다. 게다가 발을 내딛고 있기 때문에 공을 향해 잡아먹는 동작 또한 자연스럽게 나오며, 골라인 중앙을 밟은 상태에서 다음 발을 내딛을 지점을 변경해서 공격수의 위치 변화에 따라 포지셔닝 지점을 중간에 수정할 수도 있다. 모든 방향에 대비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에 방향을 바꿔도 공간에 손해를 보지 않는다.

만약 골라인이 너무 멀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라. 상대편 공격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장 먼저 하고 그 다음 스텝을 밟도록 한다.

라크로스 골리 - 7) 어떻게 세이브를 잘하는가

세이브 기본은 잘 알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이브를 잘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약간 심화된 내용들을 다뤄 보겠다. 만약, 앞부분을 건너뛰고 이걸 읽고 있다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상한 습관이 잡히기 쉬우니, 기본기부터 읽고 탄탄하게 갈고닦기 바란다.

포지셔닝 심화

공격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것은, 수학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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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약 170cm의 슈터와, 키 160cm의 골리가 맞붙는 상황이다. 골리는 반원 위에 서있다. 슈터는 골서클로부터 1m 떨어진 지점까지 다가와 샷을 시도하고 있다. 슈터는 정자세로 위에서 아래로 스윙하고 있으며, 슈터의 시야에서 보이는 공간은 빨간색, 스틱 헤드에서 노려볼 수 있는 공간은 보라색으로 칠했다. 이제, 골리를 앞으로 이동시켜보자. 슈터는 빨간색 선, 슈터의 스틱은 보라색 선, 골리는 파란색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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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앞으로 나왔다면 시야를 더 가렸어야 했는데 말이다. 오히려 슈팅을 쏠 수 있는 공간만 더 늘어났다. 여기엔 함정이 숨어있다. 골리의 키는 160cm. 슈터의 키는 170cm. 그리고 눈의 높이를 고려해서 슈터의 눈이 지면으로부터 160cm 위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저런 그림이 나온 것이다. 그럼, 슈터의 키도 공평하게 160cm로 줄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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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터의 시야가 효과적으로 차단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슛을 쏠 수 있는 공간은 늘어났다. 하지만, 여기서 고려되지 않은 것이 있다. 골리 또한 스틱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슈팅이 올 수 있는 위치의 범위를 최소화한 채 슛을 잡아먹기 좋다. 그렇다면, 반대로 슈터의 키가 더 컸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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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터의 키를 180cm라 가정, 눈높이를 170cm로 세팅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시야가 더 넓어졌다. 따라서, 골리는 자신과 슈터의 키를 비교해서, 가까이 가는 것이 유리한지, 기존 반원 위를 지키는 것이 유리한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위아래 방향에 대한 도표만 살펴 보았다. 그럼 양옆 방향은 어떨까? 어깨너비 50cm인 골리가 있다 가정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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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마찬가지로 슈터가 볼 수 있는 공간은 빨간색으로, 스틱으로 쏠 수 있는 공간은 보라색으로 표시했다. 슈터는 위에서 아래로 쏘고 있다. 이제부터 골리를 앞으로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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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터의 시야와 던질 수 있는 각도 모두 효과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슈터가 사이드로 슛을 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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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터의 시야를 더 가리는건 여전히 성공이지만, 슈팅 시 헤드에서 골대를 향한 각도 범위는 오히려 넓어졌다. 그렇다면, 다시 뒤로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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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를 왼쪽으로 20cm 정도만 보내봤다. 슈터의 눈에는 골리의 오른쪽 공간이 보이지만, 실제로 슛을 해서 그 위치를 맞추려 하니 골리가 딱 버티고 서있는 형국이 되었다. 슈터는 시야엔 들어오지 않지만 대충 있을 것 같은 골대를 향해 슛을 하거나, 슛을 무르고 다음을 노리게 될 것이다. 이 때, 골리에게 유리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경우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슈터가 제아무리 오른쪽을 맞추려 해 봤자, 골리의 몸을 맞추게 된다. 따라서, 골리는 자신보다 오른쪽으로는 슛이 갈 수 없고, 가더라도 골대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중간과 왼쪽만 막을 준비를 하면 된다. 이처럼 경우의 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가게 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나, 상대의 수를 읽는 것들을 수싸움이라 한다.

수싸움

수읽기 기본

수싸움을 하기에 앞서, 수를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 수를 읽는 것은 수많은 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으며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기다리기보다, 공격적으로 이해해보도록 하자.

근거리

포지셔닝 심화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슈터의 키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슛을 하는 경우, 골리와 슈터 사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깝다. 슈터의 키가 크면 상대적으로 골리의 머리 위 공간이 잘 보인다. 따라서 습관적으로 위로 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슈터가 골리보다 작은 경우, 골리의 스틱이 있는 윗 부분보다는 아래쪽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 몸통이 있는 중간이나 위쪽에 비해 다리쪽은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중장거리

중장거리의 경우, 키에 따른 차이가 줄어든다. 이 때 슈터가 고르는 선택지는 보통 아래쪽이다. 아래쪽의 경우, 조금 벗어나더라도 지면에 튕겨서 다시 골대를 향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거리가 멀어서 정확도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좋다. 또한 골리들도 아래쪽을 보통 힘들어하니 일석이조이다. 하지만, 이정도 거리라면, 좀 더 시간이 많으므로 반응속도로 승부를 보는걸 추천한다. 수를 읽기보다는 수싸움을 걸어보는걸 추천한다. 실책을 유도하기도 좋다. 수싸움 방법은 후술하겠다.

슈터에 따른 차이

방금 언급했듯이, 아래쪽 슈팅은 좀 벗어나더라도 바닥에 튕겨서 다시 골대를 향한다. 따라서, 수준이 낮은 슈터는 아래쪽으로 대강 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수준이 높은 슈터는 쏠 곳을 보고 맞춘다는 느낌이 강하다. 라크로스 선진국 골리들의 하체 보호대가 빈약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수싸움 기술

수싸움을 걸 때는, 티가 나지 않는게 좋다. 슈터를 교묘하게 컨트롤하는 것이다. 물론 프리샷 상황에서 수싸움을 티나게 걸어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해서 실책을 유도할 수도 있다. 티가 나든, 티가 나지 않든, 자신에게 유리한 사이드, 혹은 슈터가 슛을 쏘도록 유도할 사이드를 “조금” 더 내주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너무 많이 가면 수싸움을 한다는 것이 티가 날 뿐만 아니라, 어디로 올 지 알아도 너무 멀어서 슛을 따라가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무조건 이쪽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슈터의 눈에 다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도하는쪽 사이드로 슛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채, 평소처럼 세이브를 하도록 한다. 또, 슛이 와서 움직일 때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중간에 망설이지 않는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중간에 무르는 것이 아닌, 빠르게 두 번 시도하는 것이다.

언제 사용하는가

수읽기는 항상 진행할 수 있다. 수읽기가 익숙해지면, 상대를 보고 몸이 알아서 은근하게 적절한 예측을 하고 대비하게 될 것이다.

수싸움의 경우, 속공에 당해 완전히 뚫려서 슈퍼세이브를 해야 하거나 프리샷을 하는 등 슈터와 골리의 1:1 대결이 되는 상황에 사용할 수 있다. 평소에는 수비수와 함께 빈틈을 없애는 방식의 기본 포지셔닝을 하도록 한다. 하나를 더 막는 것보다, 하나가 더 못오게 하는 것이 좋다.

라크로스 골리 - 8) 어떻게 클리어를 잘하는가

마인드셋

클리어를 하기에 앞서, 클리어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직 언더독이다. 클리어를 할 때, 난해한 상황이 굉장히 많다. 많이 개선되었긴 하지만 여전히 환경은 열악하고, 부족한 훈련 시간으로 인해 클리어 전술을 익힐 시간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골리는 조금 더 참을성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인드셋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먼저, 클리어는 기본적으로 다같이 풀어나가야 한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탓을 하는 것도 금물이다. 경기 상황에서는 앞으로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에 집중하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것은 경기나 세트가 종료되고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말해, 그럴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경기 중에 1분 1초는 아주 소중하다. 원인파악을 하는 시간 동안,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 판단할 시간은 줄어든다. 또한, 원인을 알아내 봤자, 하면 안되는 것만 알아갈 뿐이다. 실수한 사람이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도 덤이다. 경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인 파악은 해결책을 함께 마련할 수 있는 여유있는 상황에 하는 것이고, 그건 필드 위가 아니라 벤치에서 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아웃이 존재하는 것이다. 팀원들이 클리어를 풀어나가지 못해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면, 직접 돌파해서 기회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라.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 스틱스킬과 돌파 능력과 같은 필드 플레이어로서의 능력도 함께 갈고닦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공짜는 없다.

기억하라. 언젠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차세대를 리드하는 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피드백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플레이 중에 팀원들에게 힌트와 가이드,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선수가 되어라. 컨트롤타워를 무시하고 선수들끼리 갖가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갈등과 패배를 선택한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클리어 심화

커뮤니케이션

팀원들에게 본인이 받을 수 있을 때 크게 어필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팀원들은 말을 안해도 척척 손발이 맞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다. 모두 한 팀이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라. “말 안해도 딱딱 알아야지!”라는 생각은 팀에 독이 될 뿐이다.

골리의 역할 범위

클리어에서 골리의 역할은 패스를 주는 것이 끝이 아니다. 골서클 밖으로 나와서 또 한 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되어 맨업 상황을 제공하고, 여유있게 클리어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필드에서 움직여야 할까?

골리는 항상 모든 선수의 최후방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모든 선수가 골리의 시선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상대편 선수에 의해 득점 찬스를 허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가능한 최후방에 위치해야 한다. 최후방에서 우리팀 선수들 사이의 틈을 메워주고, 함께 따라간다. 맨업 플래이를 통해 상대팀을 교란시키고, 진행이 막힐 때는 공략하는 사이드를 전환해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오른쪽을 공략하려 했지만 상대팀이 그쪽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을 때, 골리에게 패스하면 다시 왼쪽 사이드를 공략할 수 있도록 패스해줄 수 있다.

골리가 필드로 나왔다면, 맨업 상황이다. 만약 골리에게 상대팀 선수가 다가온다면, 누군가는 비어있거나, 상대팀 한 명이 두 명의 우리팀 선수를 마크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팀 선수가 기회를 만들어내고 적극적인 어필을 해주는 상황이 베스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대팀을 따돌려 보라. 그렇게 되면 우리팀은 두 명이 더 많은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물론 클리어 기본을 설명할 때 언급했듯이, 자신이 없다면, 멀리 던지는 것도 선택지에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가지 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 그 때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면 된다.

클리어 실패

클리어를 실패했다면, 다시 수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골리가 필드에서 함께 플레이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골리는 다시 골대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도 디테일이 있다. 상대팀 선수는, 골리가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든 슛을 쏘고 싶어 한다. 골리가 돌아가는 중에 무리한 슈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돌아가는 중이라도 항상 공을 보면서 뛰어야 한다. 필드에서라도 세이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전력질주하기보다는 약간은 옆으로 뛰면서 최대한의 속도를 내되, 공을 계속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상대팀을 최대한 저지해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도와줘!”

라크로스 골리 - 9) 어떻게 수비를 돕는가

골리의 제1임무는 세이브이다. 하지만, 세이브를 해야 하는 상황은 사실상 최악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전에 수비에 가담해서 슈팅을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골리로서 수비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콜은 가장 적은 에너지로 효과적으로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콜을 해줘야 할까? 기본적으로는 수비수와 비슷하다. 하지만 골리는 가장 뒤에서 필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수비수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위주로 콜을 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골리는 기본적으로 공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것들은 주변시야를 통해 살피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것들을 보고 콜을 할 때 가장 적당하다. 예를 들어, 우리팀 수비수들이 만든 진영에서 불필요하게 멀리 나가거나 가까이 있는 선수에게 진영으로 돌아가도록 주문할 수 있다. 또한 시프트를 컨트롤할 수도 있다. 시프트는, 공격수가 공략했을 때 위험한 사이드로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비수들이 한 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하는 것을 뜻한다. 공격수가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 한 쪽 사이드로 몰아넣고, 유리한 포지션을 가져간다. “오른쪽으로 몰아!”, “왼쪽으로 몰아!”, “밀어!”, “땡겨!”와 같이 골리는 수비수들에게 시프트를 주문할 수 있다.

당장 슈팅이 올 상황이 아니라면, 좀 더 많은 것들을 수비수들과 함께 콜해줄 수 있다. 픽(공격수가 수비수 옆에 벽을 쳐서 진로를 방해하는 방법)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한 우리팀 수비수들이 놓쳐서 혼자 놀고 있는 공격수가 있다는걸 알았다면, 이것도 알려야 한다. 처음엔 어느 쪽이 비었음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력이 늘고 여유가 생긴다면, 우리팀 수비수를 지목해서 그 공격수를 막아달라고 콜을 해주면 좋다. 비슷한 원리로, 속공에 당하고 있을 때, 달려오고 있는 수비수에게 어느 쪽으로 가서 어떤 공격수를 막으라고 가이드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경력이 쌓이다 보면, 공격수의 바디랭귀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곧 다지나 돌파, 슈팅을 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된다. 이 정보 또한 수비수들에게 제공하면 좋다. 난 “지금!”을 외친다.

마지막으로, 콜이 틀렸을 때 주눅들지 마라. 모든 행동은 리스크를 포함한다. 그저 “쏘리!” 하고 시원하게 털고 다음을 준비하라. 콜을 해주는게 어디인가. 방금까지 많은 것들을 요구했지만 기억하라. 골리의 제1임무는 세이브이다. 콜이 세이브를 방해한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각자 수준에 맞게 하나씩 정복해 나가도록 하라.

직접 가담

위험한 공격수 중에, 골서클 바로 근처에 있는 선수가 종종 있다. 무서워하지 마라. 오히려 골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그 선수는 공을 잡자마자 슈팅을 하고 싶어 한다. 또한 수비수들이 보통 이를 가만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 패스를 받는 것에 더 집중하기 위해 골리에게서 눈을 떼는 경우가 많다. 이 공격수는 골리에게 먹잇감이다.

먼저, 그 공격수에게 다가가 스틱을 갖다대라. 골리 스틱은 굉장히 크다. 골리의 마크를 받는 공격수에게 패스하는 것은 꽤나 큰 부담이다. 상대팀은 패스를 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무리하게 패스를 하기도 한다. 그럼 실제로 패스가 일어나면 큰일일까? 아니다. 방금까진 호랑이 굴 앞에서 당장이라도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던 먹잇감이었지만, 이 시점부터는 어두운 호랑이 굴 안으로 들어와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맛있는 먹잇감이 된 것이다. 다가가서 잡아먹어라.

먼저 골리에게 유리하게 패스가 온다면, 패스를 가로챌 수 있다. 패스를 가로채며 필드로 나가 돌파하면서 우리팀 미드필더나 공격수까지 닿도록 클리어를 진두지휘하라. 만약 가로채기 어려운 패스라면, 다음은 슛을 잡아먹으면 된다. 공격수가 스틱을 휘두를 그 위치에 내 스틱과 몸을 갖다대면 된다.

만약 골서클 근처에서 멋드러지게 점프를 했다면, 겁먹지 마라. 더더욱 맛있는 먹잇감이 된 것이다. 점프를 한 순간 공격수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제어를 잃는다. 공격수의 이동 방향은 바뀌지 않고, 공격수는 보통 급하게 슛을 쏜다. 그리고 보통 스틱을 휘두르는 방향은 일관적이고 기본에 충실하다. 급하기 때문에 습관대로 편한 자세로 쏘기 때문이다.

만약 골서클 근처에 있던 공격수가 수준이 높아 훼이크를 하거나 슛을 무르고 다시 쏘거나, 슛을 쓰는 와중에서 방향을 바꿔 던지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골을 넣었다면 박수를 쳐줘라. 골리로서 그 이상을 하는 것은 어렵다. 공격수가 아주 잘한 것이다.

라크로스 골리 - 10) 어떻게 스스로를 조종하는가

심리

스포츠에서 심리는, 팀과 선수들의 승패를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 이상부터는 선수들의 신체적, 기술적 기량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거기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멘탈이다.

긴장

사람마다, 종목마다, 포지션 마다 최적 긴장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격은 낮은 긴장도를 요구한다. 심박수가 낮은 선수가 유리하다. 반대로 아이스하키와 같은 종목은 높은 긴장도를 요구한다. 그럼 라크로스 골리의 최적 긴장도는 어디일까? 나도 모른다. 전체적인 대세만 있을 뿐, 사람마다 다르다. 라크로스 골리는 사격과 축구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중요하진 않다. 각자 어느 상황에 가장 잘 됐는지 찾아야 한다. 여기서는, 긴장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심리기술을 통해 스스로의 긴장도를 조절해보며 최적 지점을 찾도록 하라. 매일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그날의 기분상태 등을 기록하고 정리하라. 이것도 연구의 일환이다. 본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긴장도 낮추기

우린 보통은 긴장도를 낮출 것이 필요하다. 경기 상황은 당연히 긴장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긴장을 낮출 수 있을까? 호흡이 가장 효과가 좋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코로 천천히 뱉으며, 머리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뱉어낸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머리 속을 비운다. 어깨에도 힘을 빼도록 한다. 만약 비염이 있어 숨을 코로 내쉬기 어렵다면 입으로 내쉬되, 작게 오므린 상태로 내쉬도록 한다.

긴장도 높이기

나같은 경우, 나중에 되니 오히려 긴장도를 높여야 하는 케이스가 오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너무 느긋해서 주변에서 내가 뭔가를 하는걸 보며 답답해할 정도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며 산전수전 다 겪다보면, 긴장도는 낮아질 것이다. 각설하고, 긴장도는 어떻게 높여야 할까? 주의하도록 한다. 특별한 생각을 하거나 해서 긴장도를 높이지 않는다. 보통 생각은 신체를 느리게 만든다.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긴장도를 높인다. 크게 기합을 지르거나, 스스로 허벅지나 가슴을 치며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 골대 파이프를 스틱으로 칠 때 평소보다 더 경쾌하게 치는 방법도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신만의 것을 찾아라.

몰입

긴장도를 이리저리 조절해보며 답을 찾다 보면 도착하는 종착지가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몰입이라는 것이다. 방금까지 설명한 긴장도 조절 방법을 봤을 때, 긴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생각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어 이상함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이것이다. 몰입을 하게 되면, 긴장도는 알아서 최적으로 맞춰진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면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긴장도를 낮추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걸 그냥 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엔 **“스위치”**라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스위치

스위치는 스스로 특정 행동에 대해 약속을 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난 헬멧의 바이저(앞쪽 케이지 위)를 꾹 누르면, 모든 생각을 중단하고 호흡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고 멍한 상태가 된다. 이후 긴장이 필요하면 몸을 때리고, 아니면 그냥 플래이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각자 자신만의 스위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길 바란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스위치는 경기나 상황이 잘 안풀릴 때, 혹은 플래이가 시작되기 전에 사용한다. 잘 하고 있는데 불필요하게 스위치를 의식하거나 남발하지 않도록 한다. 잘 하고 있다면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라.

신체의 언어로 쓰여진 컨트롤러

심리를 컨트롤하는 기술들을 활용하다 보면, 굳이 스위치를 사용하는 등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 심리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몸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난 눈에 초점을 잠시 풀고 날숨을 느끼면서 뇌가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 후 공에 초첨을 맞추는 방법으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몰입 상태로 들어간다. 뇌가 붕 뜨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굳이 설명해 보자면 마치 며칠 밤을 연달아 샌 후 구름에 떠다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신체의 언어로 몸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걸 설명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신체와의 대화법

신체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방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신체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몸은 아주 잘 따라줄 것이다. 그럼 신체의 언어는 어떤 문법으로 되어 있을까? 어떻게 신체에 주문을 넣어야 할까? 난 신체의 언어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다. 그냥 경험적으로 데이터가 쌓였을 분이다. 따라서, 언어적으로 신체에 어떻게 주문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만 간략히 소개하겠다.

언어적 주문

어떤 생각을 했을 때, 혹은 어떻게 피드백을 들었을 때 몸에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신체 또한 언급했듯이 나름의 언어 체계가 있고, 이에 맞춰 주문이 들어갈 때 제대로 알아듣고 수행한다. 언어적 주문은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을 **“가장 짧은 문장”**으로 넣어야 한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 발로 공격수를 향해 다가가며 공격수의 스틱과 내 스틱을 맞춘다 → 스틱을 잡아먹는다
  • 슛을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막는다 → 슛을 잡아먹는다
  • 막고자 하는 지점으로 온몸이 따라간다 → 슛을 머리로 따라간다(자동으로 몸이 따라온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해야하는 것이라 했다. 하면 안되는 것을 포함하면 안된다. 보통 해야하는 것이 더 늦게 나오기 때문에 이걸 떠올릴 시간을 빼앗아 판단을 늦추고 행동을 급해지게 한다. 이로 인해 하면 안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떠올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장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것은 어휘력이 좋은 선수에게 아주 유리하다.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더라도 그 언어를 맛깔나게 이해하고 있다면, 언어적 주문의 난이도는 낮아질 것이다. 만약 본인의 어휘력이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힌트를 주자면, 기본적으로 단어나 문장의 느낌을 가지고 언어적 주문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여기서 언어는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해도 좋다. 본인만 사용하는 것이니, 어휘의 느낌으로 본인만의 언어 체계를 갖추도록 하라. 그렇게 언어적 주문을 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언어적으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신체가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체계가 완성될 것이다. 이것은 즉 훈련의 완성이다.

라크로스 골리 - 부록1) 무엇을 연습하는가

팀 훈련 및 경기

팀 훈련은 실제 경기 상황과 같다고 하였다. 그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될까? 아니다. 경기는 실력을 겨루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다시 훈련의 장이기도 하다. 실전 상황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에 신경쓰며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면 된다.

수싸움

실전 상황이어야만 수싸움에 대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통하는지 테스트해볼 수 있다. 각종 수싸움을 시도해 보고, 되는 것과 안되는 것, 그리고 되는건 어떻게 할 때 잘 되는지에 대한 디테일을 갈고닦길 바란다.

심리 조절 및 언어적 주문

실제 경기상황이 아니면 이런 것들은 연습해보기 어렵다. 생각해본 심리기술이나, 스스로에 대한 언어적 주문이 실제로 잘 통하는지 또한 실전에서 테스트해봐야 한다.

클리어

같은 팀 선수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패스를 아무리 잘해도 우리팀 선수들과 합이 맞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이다. 훈련 전, 혹은 경기 전에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합을 맞추도록 한다. 또한, 팀 훈련 중에 드릴에서 세이브를 했다면, 가능한 누군가에게 패스하는 연습을 하라. 받아주지 않는다면, 코치님께 선수들이 클리어도 받아주도록 해달라 부탁을 해도 좋다. 클리어의 완성은 합을 맞추는 것이다. 물론, 받아들이는건 코치의 몫이므로, 적당히 부탁하도록 한다. 아님 말고!

기본기 연습? 새 스틱?

기본기. 예를 들면, 패스와 같은 것은 팀 훈련에서 바꾸려 하지 말라.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방법으로 패스를 줘서 팀훈련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라. 마찬가지의 이유로, 스틱을 새로 사거나, 포켓을 다시 묶었다거나 할 때, 팀 훈련에서 처음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리 월볼을 해서 스스로의 손에 맞는 상태로 만들어서 팀 훈련에 임하도록 하라. 팀 훈련은 팀이 합을 맞추기 위한 훈련임을 명심하라. 개인훈련을 하지 않는 골리는 매일 같은 실수를 하고, 매일 같은 방법으로 골을 허용하며, 매일 같은 방법으로 클리어를 실패하게 될 것이다.

개인 훈련

개인 훈련에서는 해볼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다양하다. 쭉쭉 써내려가 보도록 하겠다. 언급하는 것들 이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들이 있으니, 연구하는 자세를 유지토록 하라. 나 또한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했을 뿐, 이외에도 더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훈련의 기본적 원칙

훈련의 효과는 실전 상황과 유사할 수록 크다고 했다. 따라서, 세이브를 위한 훈련의 최고봉은 세이브이다. 공격수와 함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슛업을 하라. 공격수는 한 자리에서 쏘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면서 세이브와 포지셔닝을 연습할 수 있도록 해달라. 골리는 슛업과 함께, 세부적으로 연습할 것들을 녹여내도록 한다. 이때는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도 된다.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라.

마찬가지로, 만약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월볼도 좋지만 패스를 함께하라. 그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서로의 합도 맞추고, 패스도 섬세하게 가다듬어라. 항상 움직이면서 패스를 하고, 상대방의 스틱 헤드에 공을 정확히 꽂아줄 수 있도록 연습하라.

만약 아무리 신경써도 영 자세가 무너지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드릴이다. 드릴을 통해 머슬메모리에 동작을 각인시킨다. 머슬메모리는 몸의 동작에 대한 기억이라 설명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이 바로 머슬메모리에 동작이 각인된 결과이다. 신체의 언어로 쓰여진 행동 체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훈련은 반복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주 많은 드릴을 맛보기보다는, 차근차근 하나씩 수없이 반복하여 자기것으로 만들어라. 모든 드릴을 다 정복할 필요는 없다. 목적을 달성하는 드릴 한두 개면 충분하다. 자신만의 개인훈련 루틴을 만들도록 하라.

혼자서 할 수 있는 개인훈련

그럼 이제 정말 혼자 훈련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하겠다. 먼저 한 가지 좋은 소스를 소개하겠다. "LaxGoalieRat” 이라는 사이트이다. 난 이곳에서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물어볼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되어 있지만, 영상 자료도 많고 미국의 현역 골리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자료도 있다. 팟캐스트 형식이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틀어놓기도 좋다. 그리고 나 또한 영어를 굉장히 못하는 사람이다. 난 대학교에서 영어 교양 필수 수강과목의 난이도를 정하는 시험에서, 학점을 쉽게 받기 위해 최하수준을 받으려 일부러 망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던 그 시험에서, 시험을 열심히 치르고도 당당하게 최하수준을 받은 사람이다. 영어에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금방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이팅이다. 혼자서 하는 골리 드릴에 대한 게시글 링크를 첨부하겠다. 골리 드릴 모음(LaxGoalieRat)

세이브

  • 위치 별 세이브 기본자세
    • Doc drill
    • Walk the line
    • Magic square
  • 포지셔닝 스텝
  • 반응속도 및 Hand-eye coordination
    • 저글링
    • 한손 리액션볼(세이브 자세와 동일하게 벽에 리액션볼을 튀기고 잡는 것)
    • 월볼(아주 세게 던지고 세이브 - 장비 착용하고 할 것)

패스

  • 월볼 - 거리를 바꿔가면서 벽에 목표지점을 정해서 맞추면서 진행한다.

피지컬

  • 근력 및 파워
    • 스틱이 무겁다고 하면 안된다.
    • 부상 위험도 줄여줄 것이다.
    • 웨이트 및 플라이오메트릭 훈련이 좋으며, 몸이 필요 이상으로 무거워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한다.
  • 체력
    • 턴오버 한 번 났다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된다.
    • 줄넘기, 인터벌, 조깅 등을 할 수 있다.
  • 민첩성
    • 스텝 래더와 같은 민첩성 훈련도 함께하면 좋다.
    • 필드 움직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또한 몸의 무게중심을 제어하는 기술 자체가 좋아질 것이며, 고유수용감각도 좋아질 것이다. 고유수용감각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내 몸의 위치와 속도 등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이것이 예민해지면 몸을 컨트롤하는데 유리해진다.

라크로스 골리 - 부록2) 국제대회에서 만나는 상대팀은 어떤 상대일까

한국에서 훈련할 때, 한가지 논리적으로 타당한 불안이 엄습하게 된다. ‘난 한국의 슛을 막으려고 훈련하는게 아닌데, 한국 슈터들의 슛을 막고 수를 읽는 것이 실제로 대회에 가서는 안 통하는게 아닐까?’ 왜 이렇게 구체적인 예시를 드는지 궁금할 것이다. 맞다. 이건 내가 했던 생각이다. 아무리 우리팀 선수들의 슛을 잘 막아도, 대회에서는 만나본 적 없는 팀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슛을 쏘는지, 그들이 내 수싸움에 어떻게 반응할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불안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팀에 관계없이 통할 방법으로 훈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난 이 생각 때문에 처음엔 수싸움같은 것들보다는 공을 보고 반응하며 막는 것을 연습하는데 집중했다. 예측하려는 본능을 꾹 참으며 예측을 철저히 배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엇이 팀과 관계없이 통하는 방법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로 상대해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럼 그때까지 이 막연한 불안을 감내해야 할까? 아니다. 인간에게는 간접 경험이라는 기술이 있다. 간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상대해 봤던 국가들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소개해 보겠다. 단, 기억하라. 막연한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이 부록을 준비한 것이다. 실제 경기는 기본적으로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서 임해야 한다.

일본 - 상위권, 동양 체격

일본은 확실할 때 슛을 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골리의 포지셔닝이나 자세가 무너지는 그 시점을 노린다. 따라서 공략 사이드가 크게 바뀐다던가, 수비수가 마킹하지 못해 놓친 공격수로 인해 기회가 만들어졌을 때 대부분 슈팅을 한다.

골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쏘기 때문에, 공에 집중하고 골대 앞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집중력을 흐릴 수 있는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공에 집중하는게 좋다. 수싸움 또한 더 티 안나고 섬세하고 교묘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슛이 올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좋다.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그렇다고 세이브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반응속도, 신체의 스피드, 멘탈/집중력 모두 잘 준비해 가야 한다. 이에 더해, 멘탈이 좋아야 한다. 확실할 때 쏘기 때문에 평소보다 세이브율이 낮게 나오는데, 멘붕하지 마라. 그저 한 번 한 번 몰입하고, 상황이 종료되면 시원하게 잊어라.

홍콩, 대만, 중국 등 - 중, 하위권, 동양 체격

여러 국가지만, 한 그룹으로 묶었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같은 동양인 체격이더라도, 수준에 따라 슈팅 스타일과 수싸움에 대한 반응이 다른데, 이들은 한국과 비슷한 팀들이다. 훼이크가 잘 없고, 한국에서 연습하던 대로 했을 때 잘 된다.

💡 홍콩의 경우, 최근 오키나와에서 봤을 때 슛 파워가 정말 많이 증가했다. 또한 키가 정말 큰 흑인 선수가 있는데 가까이 가지 않는걸 추천한다. 위에서 빈 공간을 다 보고 꽂아넣는다.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등 - 중, 하위권, 서양 체격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붙어볼 만한 팀들이 꽤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역시나 비슷하다. 수싸움이 잘 통한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체격이 크다는 것이다. 수비수가 붙어 있어도 슛을 할 수 있으며, 힘으로 때린다. 따라서 언제 슈팅을 할 지 모르니 항상 준비된 자세를 유지하라.

또한 키가 크기 때문에 섵불리 다가가면 머리 위로 빈 공간을 허용하게 된다. 따라서 포지셔닝 시 섵불리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반원 안에 있는게 좋다. 물론, 이들이 그라운드볼을 하는 등 눈높이가 낮아진 경우라면 다가가서 잡아먹어도 좋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키가 작은 선수들은 있을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상대팀에 구애받지 말고 항상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걸 잊지 마라. 국가별 특징은 단순히 독자들의 막연한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캐나다, 이스라엘 - 상위권, 서양 체격

캐나다같은 경우 2015년 U19 월드컵에서 만나본 것이 전부이다. 사실상 그냥 한 시간 짜리 슛업을 한 것 같았다. 힘좋고 거대한 슈터들이 쏠 곳을 정확하게 노리며 쏘는 슈팅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미래에 이들과 맞붙을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나름의 가설로는, 역시나 기본적인 원리에 입각한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활용하면 충분히 즐거운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생각보다 종종 붙게 된다. 한국보다 훨씬 잘하는 팀이긴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자주 붙게 되는 위치에 있는 듯 하다. 이들은 캐나다보다는 덜 막막하지만, 여전히 저 위 어딘가에 있는 팀이다. 첫 경기에 만나서 수준높은 Non-passport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없을 때, 초반에 한동안 생각보다 접전이었던 적이 있지만, 전세는 역시 곧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스라엘 선수들의 경우 미국에서 많이 넘어간다. 따라서 슈터의 수준은 캐나다, 미국 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단, 캐나다나 미국 대표팀보다는 덜하다. 각자의 국가에게서 기회를 얻은 미국의 선수들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Non-passport 선수들과 비슷하다. 단지 Passport 선수들의 수준도 높을 뿐이다. 미국에 살지만 이스라엘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던가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국가를 불문하고 통하는 방법

이제 국가별 특징에 대해서는 대충 알겠다. 그럼, 국가에 관계없이, 무엇이 통할까? 이것을 공략한다면, 같은 시간 동안 훈련을 하더라도, 그 효과는 배로 늘어날 것이다.

먼저, 유전적 요인과 체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체격에 대한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 보겠다. 2015년 U19 월드컵에서 핀란드 팀이 아주 거대한 골리를 데려왔다. 말그대로 정말 거대했다. 살 때문에 아래쪽으로 스틱을 내리지도 못하고, 아래쪽 공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통산 세이브율은 45% 근처로 나왔다. 발목쪽으로 슛을 하면 된다는 파훼법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 거대한 골리는 슈터를 향해 한 발만 앞으로 가면, 그 슈터는 골대가 어디있는지 조차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격이나 유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린다. 다른 이야기로 희망을 주려 한다. 의사의 선의의 거짓말같은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앞으로의 발전을 논할 수 있다. 받아들여라. 체격이나 유전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이 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에 무너지지 마라. 다른 본인만의 무기를 갈고닦을 생각을 하라. 완벽한 포지셔닝, 적극적인 수비 가담, 수싸움 등을 통해 약점을 가리고 강점을 무기로 상대를 제압하라. 언급했던 선수인 Megan Taylor 또한, 불리한 체격을 가진 골리이다. 평균키가 큰 미국에서, 키가 160cm(5’3”)밖에 안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슛에 반응하며 세이브하는 능력을 날카롭게 갈고닦았다. 그 결과로 그렇게 쟁쟁한 미국 대학 선수들 사이에서 탑을 찍은 것이다. 이처럼, 또 한 명의 Megan Taylor가 되어라.

이제, 모두가 예상했던 답을 마저 언급하겠다. 기본 세이브 자세 및 패스캐치 능력, 반응속도, 신체의 스피드, 멘탈, 집중력, 포지셔닝. 모두 이 시리즈에서 강조한 것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돌고 돌아 기본을 향한다. 기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오늘 연습을 좀 해야겠는데 뭘 할지 막막하거나 장소가 여의치 않다면, 일단 그냥 기본기 연습을 하라. 월볼을 하고, 세이브 자세를 수없이 반복하라.

수싸움의 경우 국가별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통한다. 한쪽 사이드를 “조금” 내어주게 되면, 실제로 내어준 사이드로 올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내가 수싸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쪽 사이드를 조금만 내어주고, 그쪽으로 올 가능성이 좀 더 높다는 것만 기억하고 평소대로 세이브를 하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수읽기에 대한 설명도, 여러 국가들을 상대해 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따라서, 만나보지 않은 상대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접어두고, 그저 본인이 하는 훈련에 집중하도록 하라.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들인 노력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뎀 윈 델 넷

동생 생일이 다가오는데, 마침 동생은 3D 모델링 때문에 산 게이밍 노트북을 짊어지고 일산에서 신당까지 오가다가 지쳐버려서 싸고 가벼운 노트북을 이리저리 찾아보고 있었다. 힌트를 이리 쉽게 주다니? 그래서 중저가 노트북을 사주기로 함.

일단 문제와 해결책은 아래와 같다.

  • 일산과 신당을 매일 오가는데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기 버겁다. 최근엔 그래픽 작업보다 논문작업이 주 용도이다.

    → 가벼운 사무용 노트북을 산다

  • 발표 시, 좁은 강단 위에 무식하게 큰 노트북을 올려서 하는데 많이 불편하다(낑낑대는 사이 청자들의 시선은 덤)

    → 화면 크기 적당한 노트북을 산다

대충의 구상은 이렇다.

  • 13 - 14인치 PD충전 지원 사무용 노트북 구매(외장그래픽카드 없는걸로)
  • 인텔 13-14세대 CPU는 피하기(버그 있음)
  • 집에 게이밍 노트북을 켜두고 원격 데스크톱 열어두기 → 원격으로 그래픽 작업 진행
  • 원격 붙을 수 있는 장소 범위: 아무데서나
    • 컴알못에다가 막 쓰는 습관을 고려
    • any로 원격 열면 분명 랜섬웨어로부터 행운의 편지를 받고 논문 처음부터 다시 쓰는 미래가 보인다.
    • 따라서, VPN 구축 필수

노트북은 DELL사의 2024 Latitude 5330 13.3인치 Free DOS 제품을 구매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 발생. 윈도우 설치 중 드라이버를 찾을 수 없다는 오류가 떴다. 원인을 찾아보니 RAID를 지원하기 위한 Intel RST VMD 드라이버가 설치용 부팅USB에 없었던 것. 그래서 넣어주려고 보니, 내 리눅스 PC에서는 불가능했다. dd 명령을 통해 만든 부팅USB를 마운트할 수가 없었음. 그래서 윈도우 가상머신으로 USB에 해당 드라이버를 Extract해서 해결.

다음 관문이 나타났다. 윈도우를 설치하고 보니, 무선랜카드 드라이버도 없었다. 이외 각종 하드웨어 대부분 필수적인걸 제외하면 드라이버가 없었음. 델 사의 홈페이지에서 그냥 아싸리 드라이버 팩을 받아서 설치를 하려는데… 너무 많아서 열받으며 동생과 잡담을 하던 중, 내 노트북의 무선랜모듈 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 그때 내가 손에 들고 보여준 외장무선랜카드, 아니 이걸 왜 이제야 본거지?

그걸 이용해서 동생의 노트북에서 와이파이 연결한 후 델에서 제공한 드라이버 자동 설치 유틸을 받아서 돌렸다. 해결. 와이파이는 물론, 각종 하드웨어에 대한 동작도 개선되었다. 예를 들면, 두 손가락으로 터치패드에서 스크롤을 하는 등의 것들이 지원됨.

원격데스크톱 설정 후 네트워크에서 접속 확인. 그럼 이제 VPN 구축이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변수 발생. 집의 IP는 유동IP. 어느날 갑자기 바뀔 수 있다. 실컷 VPN 세팅해도 IP가 바뀌면 말짱도루묵이다. 물론 DDNS 설정하면 되기는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남. 라우터 설정으로 ADMIN 접근이 안됨. 맥주소 필터링에 걸렸다 함. 아 초기화하기 귀찮은데… 이때 떠오른 것은 Tailscale VPN이다. 전 인프라팀 팀장님으로부터 소개받은 Wireguard 기반 VPN인데, 세팅이 어렵기로 유명한 Wireguard VPN을 쉽게 세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오픈소스이다. 해당 VPN에 연결한 호스트를 DNS에 등록해서 통신하는게 가능하고, 호스트끼리 연결되면 P2P 연결이 되어 속도도 좋다. 근데 이거… 너무 좋잖아? 나도 내 개인망 하나 구축해서 이래저래 놀 예정이다.

다음 관문은 체력이다. 지금 이 구상이 머리속에서 계속 커지는 중임. 신체 스레드가 뻗어 대뇌 스레드가 생산한 정보들이 처리되지 않아서 램이 차오르는 중이다. 내일 친척집 방문도 못하게 되었다. 막 이것저것 만들건 많은데 실행이 안되니 서로 뒤엉켜서 우선순위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약오른다.

랜모듈 교체

난 MSI사의 2021년형 모던 14 노트북을 이용중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와이파이 연결에 계속 문제가 생겼다. 어쩔땐 중간에 끊기고, 어쩔땐 아예 DHCP를 이용 못함. 그래서 따로 USB포트에 무선랜카드를 꽂아서 사용해 왔다.

그러다 한번 깜빡하고 가방에 랜카드 그대로 꽂힌 채 넣고 다녔다가 곧 랜카드가 부셔지기 직전이 됨. 마치 내 허리처럼 언제 나가리될지 모르는 그런 신세가 되었음. 그래서 먼저 내장 랜모듈의 펌웨어 드라이버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델명을 알아봤더니 Mediatek MT7921K. 펌웨어가 없었음. 알고보니, 특정 리눅스 버전 이후부터는 지원이 안되고 있었다. 안그래도 아치리눅스라 비교적 많이 최신 커널인데, 딱걸렸다. lts 버전 또한 이미 해당 커널 버전을 지나쳐 있었음. 그럼 방법은, 이전 버전의 커널 소스코드를 받아서 직접 빌드해서 쓰는건데… 안해보기도 했고, 너무 귀찮다. 그리고, 아치를 왜 쓰는데. 최신 커널 제일 먼저 받아다 써볼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 아닌가. 왜 내가 고작 이 랜모듈 때문에 리눅스 커널을 과거 버전으로 이용해야 하나. 아치리눅스를 아씨리눅스로 쓸 참인가?

그러던 중, 당근에 레노버 노트북에서 탈거한 리얼텍 랜모듈을 판매하는 글 발견. 바로 구매했다. 노트북 하판을 뜯어서 교체. 부팅하자마자 랜모듈 인식하더니 와이파이 연결하고 DHCP 서버에서 IP까지 정상적으로 받아오는 것 확인. 이제 무선랜카드를 따로 안들고 다녀도 된다. 커널 업데이트도 마음놓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 나서 다시 linux-lts 대신 linux 이용하도록 세팅 변경하고 pacman 업그레이드 돌렸다

이제부터 리눅스 6.10.10 사용한다. 신난다.

회고록 - 1. 서론

난 요즘 건강 문제로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집중력을 회복한 지금, 살아온 길을 한 번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아주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 왔다. 이동이 잦아서 여러 세상들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다르다.

전 여자라크로스 대표팀 감독님은 나에게 한 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난 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그럴 만 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냥 “저도요” 하고 말았다. 난 할 만한 말이 많지 않다보니, 소위 “개소리"를 많이 한다. 영양가 없는, 장난에 가까운, 뜻없고 과장된, 실없는 헛소리들 말이다.

이동이 잦은 삶을 살았고, 어디를 가도 이방인인 삶이었다. 특유의 폐쇄적인 성격은, 그 여러 세계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관찰케 하였다. 삶의 흐름이 다르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잘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남들도 다들 이미 많은 일들을 겪었고, 자신들의 세계관이 존재한다. 게다가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도 섞여 있기 때문에, 밝은 친구들에게 그런 세상 이야기를 하기도 좀 부담스럽다. 딱히 알아도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길게 늘어놓는 것은 타인에게 피로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회고를 할 땐 누군가에게 말로 털기보다는 혼자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난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 중간고사 때 사회 과목 시험에서 주관식 문항의 답인 등고선이 기억나지 않아서 고민 끝에 고등선이라는 답을 제출한걸 기억하고 있다. 아 물론, 분했기 때문에 기억하는거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 때 어머니가 나를 어떤 자세로 업었는지도 기억한다. 물론, 불편하게 업어서 기억하는거다. 초등학교 시절에 놀러 다니던 강가의 식당 이름도 기억한다. 솔밭가든, 신장가든. 솔밭가든쪽이 수심이 더 깊어서 놀기 좋았다. 장기기억에 남기만 하면 꽤나 생생하게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대학교 교양 심리학 과제로 인생곡선을 그려오라고 했는데, 64개의 사건에 대한 곡선을 그려갔다.

기억하는게 많은 바람에, 글을 쓰면 많이 길어지는 편이다. 난 항상 글을 쭉쭉 써내려간 후, 요약하고 지우고 재배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다행히도 대학교 글쓰기 수업에서 개요를 작성해서 뼈대를 세우고 글을 쓰는 등의 잡기술을 얻어서, 이런 식으로 삽질하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다.

이번엔 회고를 공개하게 되었다. 이 블로그는 배설하듯 글을 쓰는 공간이다. 남의 피드를 차지해서 강제적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런 공간에 걸맞게,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갈 것이다. 사실, 이렇게 써놓고 실제로는 고쳐써야 했다. 처음엔 쭉 이어서 썼다가, 너무 길어서 10편으로 나눴다.

회고록 - 2. 이별 전문가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온 가족이 가장을 따라 함께하던 과거, 군인 가정은 한가지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바로 잦은 이사다. 1~2년 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표준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단지 곧 지나가고 사라질 무언가였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유년시절 남은 기억엔 인천에서 지내던 동안 내가 매일같이 집에 찾아갔던, 항상 자신이 하던 게임을 구경시켜주던 사람과, 평택에 지내는 동안 집에 매일같이 방문하며 놀았던 친구의 어렴풋한 얼굴 특징과 이름 정도만 있다. 하지만 이사로 인해 결국 그들과도 이별해야 했다.

유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사실 그냥 성격이었을 수도 있다. 부모님께 뒤늦게 들은 사실이지만, 난 아기 때 자폐증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자폐증을 진단받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가까운 스펙트럼에 있긴 한가보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 이런 생활을 무덤덤하게 보내는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난 사람보다 주변의 사물이나 돌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혼자 잘놀았다. 곤충채집을 하거나, 집 근처 개울에서 올챙이나 도롱뇽을 잡기도 하고, 식초와 소다를 구해서 필름통 폭탄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주말이면 가족끼리 근처의 강으로 가서 수영을 하고 피래미와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다. 그렇다고 완전 폐쇄적이진 않았다. 가끔 놀이터로 가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함께 놀았다. 노는 방법도 특이했다. 부서진 나무 시소를 다같이 낑낑대며 뜯어와 그네에 연결해서 4-5명이 동시에 그네를 타기도 했다. 당장 내일도 헤어질 수 있는 우리들은 굳이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재밌는 무언가를 하는데 더 집중했다.

그래도 다른 군인가정과는 다르게 우리 가족은 계룡이라는 군인도시에서 장장 6년 정도를 지냈다. 오래 지내니 한 곳에 정착되어 정서적 안정감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때도 옮겨다니는 삶을 살았을 터.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면 함께 놀기는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어차피 이 군인도시에서는 또 학기가 지나면 누군가 전학을 가고, 학년이 넘어가면 무더기로 인원이 바껴서 누가 가고 누가 왔는지 조차 안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아버지들의 거처가 결정되는 발령철에 자신들의 이후 행선지를 밝히며 이별을 고하는게 그곳의 문화였다. 대신 이곳은 한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왕따가 생길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적당히 같이 놀다가, 헤어질 땐 쿨하게 헤어졌다. 중간 전학생은 매년 2-3명씩 있었기 때문에 금방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아버지가 제대하셨고, 새 직장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데 아주 오래 걸리게 되었다. 이사를 간 이후, 몇년동안은 매년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동급생 이름을 다 알지 못했다.

회고록 - 3. 가난의 표현형

부산으로 이사갔다. 부산은 처음이 아니었다. 방학 때 종종 부산 용호동의 외할머니 댁에서 한 달 정도씩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 실제로 다닌건 처음이었다. 호전적인 사투리를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을 느낄 수 없었다. 고작 한 학기를 다니고 졸업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민간 가정으로서의 학교 생활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내가 있던 곳은 공단 근처였다. 부촌은 아니었다. 아버지들이 모두 똑같은 군인이었던 계룡과는 달리, 그 안에서는 빈부격차가 있었다. 엇나가는 학생들도 많고, 사방이 도로에 인접한 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선도부가 할 일이 많았다. 난 입학 당시 사춘기를 크게 겪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순둥했고, 애들한테도 관심이 없어서 담임선생님은 나를 선도부로 배정했다.

아침엔 요일 별 당번으로 일찍 등교해서 복장 및 지각단속 등을 하고, 점심엔 외출을 관리하고, 담을 넘거나 달려서 교문을 탈출하려는 무단외출 시도를 단속했다. 난 설명을 듣고 학교의 헌병이라고 이해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은 눈치없이 3학년 양아치를 잡고 이름을 적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조차 예외는 없었다. 장교가 온다거나, 매일 보는 이가 온다고 해서 신분증 검사를 안하는 헌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은 사실이지만, 위험한 일이 없진 않았다. 한 번은 내가 급한 용무로 복도를 뛰어가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목에 커터칼을 들이댄 적이 있었다. 손이 알아서 칼을 쳐서 떨궈버렸고, 다리는 달리던 그대로 달려나가서 그 학생이 누군지도 못보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그래도 그런 사건이 한 번 지나가고 나니, 이후 딱히 나를 건드는 사람은 없어서 평화롭게 다녔다. 나에게 소매치기를 시도하는 양아치 후배와 눈이 마주친 것 정도가 다였다.

난 그냥 중학교에 선도부를 하기 위해 들어간 로봇같았다. 인간 사이의 깊은 교류라는 것을 애초에 몰랐다. 대화는 그 대화로 끝이었다. 그냥 들은 말에 대답하는 것이 내 대화법이었다. 사실 왜 이런걸 물어보는지도 이해 못했다. 매일 밥을 함께 먹던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좀 미안하다. 난 친구들보다 그날의 수업, 선도부 활동, 선생님이 시키는 일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선생님들은 나를 신뢰했고, 나도 모르는 권력이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전학을 온 친구가 나에게로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 의례 그랬던 것처럼 그저 밥을 같이 먹고 대화를 나눴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다른 반에 있었기 때문에, 난 점심 시간에 따라오는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하교하면서 교문 밖을 나설 때까지 따라오는 그 친구와 간단한 담소를 나눴다. 그 친구가 무슨 일을 계기로 따돌림을 당했는지, 무슨 일들을 당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본인이 이야기할 리 만무하고, 내가 알아볼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 특별히 생각하거나 느낀 점이 있었다면 분명 포대기에 싸여 어머니 등에 업혔던 기억처럼 뚜렷하게 기억났을텐데 말이다.

내가 평소 함께 밥을 먹던 다른 두 친구는 그 친구가 따라오는걸 막지 않자 나에게 경고했다. 그 친구가 왕따라고. 그렇군.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곧 멀어졌다.

그 왕따 친구는 곧 다시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나에게 편지를 주고 갔는데, 그제서야 그 친구가 왜 나를 따라다녔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다니는 치외법권같은 것이었다. 내가 평화로운 생활을 누렸던 이유는 내 주변이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내 뒤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익숙한 이별을 했다.

그곳에서 본 가난의 모습은,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는 학생의 모습 따위가 아니었다. 불안 속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피해 멀어졌던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 여파를 받는게 두려워서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을 뒤로 한 채 따돌림에 가담하고 있었다. 나아가서, 약해빠진 청소년일 수록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 쎈척을 하며 주변을 피곤하게 했다.

회고록 - 4. 중산층의 세상

아버지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해 상경했다. 어머니는 골프에 입문해서 3년 만에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다. 아무래도 곧 있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또 이사를 갔다.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간 곳은 해운대였다. 맞았다. 맹모삼천지교였다. 어머니는 골프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더니, 곧 골프연습장을 개업해서 사업을 키워나갔다.

난 해운대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빈부격차가 뭔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해운대는 어느정도 부촌이다. 학생들의 키에서 바로 나타났다. 중학교 때는 내가 큰 키였다. 하지만 해운대에선 특별하지는 않은 키였다. 키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달랐다. 학생들의 얼굴색은 골랐고, 밝았다. 노는 애들은 있어도, 남을 괴롭히는 무리는 없었다. 왕따도 없었다. 걱정이 없는 그곳의 학생들은 순하고 착했다. 즐겁고 평화로운 고교 생활을 누렸다. 선도부는 그저 등교시간에 차와 학생의 길을 분리하며 학생들의 안전에 집중할 뿐이었다. 복장위반이나 지각은 그저 해프닝이었다. 그걸 핑계삼아 선생님은 툴툴거리며 말을 걸고, 학생은 능글맞게 웃어넘기며 쏙 빠져나갔다. 기자와 작가들은 이런 부촌에 악마가 살길 바라며 각종 자극적인 기사와 작품을 내놓지만, 실제로 악마는 빈자들의 도시에 더 많았다.

부촌에 들어간 로봇에겐 곧 체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하고싶은 것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마치 관찰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살았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어차피 인간은 다 죽는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도 중학교 때까지 봐온 것들에 의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친구들과 몰려다니지 않는 사람은 그 시기, 나름 배우고 겪은 일들을 종합하며 생각이 참 많았다. 세상은 어리석은 자들이 스스로 만든 하나의 지옥이라 생각했다. 목표의 탄생은 이 가치관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어차피 죽을 인생, 하고싶은거나 실컷 해보자”였다. 흘러다니는 삶은 변하지 않았지만, 변화하는 사이클 사이에 몰입할 것들이 항상 생기게 되었다.

회고록 - 5. 성취

고등학교 3학년에 입시체육을 시작했다. 1학년 때부터 세워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체육대학 진학을 부모님은 내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 가고싶다면 SKY 대학을 가라고 했다. 찾아 찾아 입시요강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 학교인 연세대를 목표로 뒀다. 화, 목은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월, 수, 금은 학원에 가서 훈련을 하고 학교로 돌아와 텅빈 교실에서 야간자율학습 연장전(야야자라고 불렀다)을 했다.

학원의 강사들은 대부분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다들 국가대표 상비군 이상급이었다. 부산대, 동아대 등, 부산의 대부분 대학교들은 육상 기초실기의 비중이 높았다. 심지어 부산대에는 마의 중거리 달리기가 실기 종목에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죽도록 뛰어다녔다. 일단 3km를 뛴 다음,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20m, 30m, 50m 스프린트를 각각 5-3-2회 실시한 후 다시 50m를 80% 윈드로 뛰고 돌아온 다음, 점프 투성이인 다이나믹 웜업을 한바탕 뛰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본 훈련이 시작됐다. 그리고 서킷, 하체파괴, 인터벌이라는 극혐 3대장이 있었는데, 이 중 하나를 매주 2회 훈련 마무리 전에 진행했다. 한 번은 해변의 모래사장을 뛰었는데, 끝나고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해야 했다. 이런걸 하고 사니 세상 무서울게 없어졌다. 어머니가 공부가 더 편하다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목표하던 연세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했다. 사실 이 과정도 우여곡절이 컸다. 안정지원 점수대로부터 무려 40점 정도 떨어지는 수능 언수외(국영수) 표준점수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뭐 당연한 결과였다. 고집이 쎄서, 모르는 수학문제가 있으면 나름의 답을 도출하기 전까진 절대로 답지를 보지 않았다. 한 문제를 3시간 넘게 잡고 있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에 부모님이 사둔 과학 전집을 읽다가 차원이론에 빠져 엉성한 이해로 4차원에 대한 좌표평면을 그려보겠다고 엉뚱한 삽질을 하면서 시간을 날리기도 했다. 학교 수학선생님에게 가져가 물어봐도 모른다는 답을 받았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네 번째 축은 시간이라는 답을 받았는데, 하필 그 내용을 읽기 전이었어서 “에이 뭔소리야” 하고 또다시 나름의 답을 찾겠다고 난리를 치며 시간을 날렸다. 3차원을 2차원에 그리니까, 그럼 3차원에 4차원을 그리면 되나? 하고 정육면체 위에 그림을 그려대기도 했다. 목표에 맞지 않게 너무 여유를 부려댔다.

각설하고, 그럼 그 40점 떨어지는 점수를 어떻게 만회했냐고? 내가 평소 서울의 입시정보를 입수하던 안양의 체대입시학원에서는 내가 합격 가능하다는 베팅을 했다. 나름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강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통큰 제안을 했다. 이 학원은 이전부터 수능점수에 비해 상향지원을 하는 분야에 전문이었다. 상경해서 전공실기를 다졌다. 결국 실기로 수능 점수를 만회하는데 성공해서 무사히 입학했다. 합격 후 어머니는 학원 원장님께 감사의 표시로 입시학원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사례금으로 드렸다.

내 소식은 부산에서 다니던 입시학원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적당한 수능점수와 함께 합격했다면 그정도 호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아이도 혹시?” 이 사례는 학부모들에게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부산은 여전히 그런 스토리를 많이 팔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홍보물엔, “X등급, 어디어디 합격”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 일색이었다. 그곳은 그런 호재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어 있었다. 그 때는 그 호재를 소화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대표님은 나에게 그곳에 어떤 노하우들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계산이 들어맞았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가의 외제차에 나를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최근에 생긴 여자친구를 소개할 뿐이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가 봐도 그건 대놓고 망조 신호였다. 하지만 충언을 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미 대표님은 눈빛이 취해 있었다. 결국 정해진 수순대로 그 학원은 폐업했다. 그곳은 호재를 맞이했을진 몰라도, 만들어내는 법은 몰랐다. 운동은 힘들어도 나름 고3 시절을 즐겁게 보내게 해준 곳이었는데, 안타까웠다.

대조적으로, 안양의 학원은 지금도 성업중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이런 사례가 튀어나왔느냐, 아니면 그 사례를 직접 만들어 냈느냐이다. 난 1학년 때부터 입시정보나 전략은 모두 안양의 학원을 통해 얻었다. 전략의 수학적 근거까지 세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수능 전에 공부할 시간까지 쪼개서 당장 기초실기 시험을 봐도 될 정도로 육상능력과 기초체력을 완성해 놨지만 수능이 끝나고 추가로 유입된 새로운 수강생들과 함께 또다시 지옥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상경했을 땐 체력이 아니라 바로 전공 기술훈련에 들어갔다. 체력은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관리했다. 덕분에 오전에 나가 밤에 돌아오는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더 일찍 나가서 개인적으로 연습할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매일 더 일찍 가서 스스로 곱씹으며 기술훈련을 했다. 게다가 이곳은 이전의 많은 케이스들을 바탕으로 실기시험을 직접 치뤄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 노하우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난 그저 또 하나의 상향지원 합격사례로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사례를 얻은 것이 아니라, 나의 데이터를 얻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취에 대해 그것이 내 성취인가 남의 성취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과, 한 번 한 번의 성취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특히 행운이 클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명확하게 알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고록 - 6. 사회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가 생겼다. 골프선수인 그 친구는 나처럼 4차원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진짜로 우주로 나갔다. 진짜 우주 이야기도 했다. 차원이론 따위를 이야기해도 그 말을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4차원인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오던 그 친구는, 나에게 위험한 사람을 피하는 팁과 같은 것들을 많이 알려줬다. 눈빛, 시선의 움직임, 순간순간 드러나는 표정을 통해 구린 속내가 따로 있는지 없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그런 팁이다. 인간관계가 얕아서 고정관념이 하나도 형성되지 않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서울 가면 코를 베어간다고, 사이비 종교의 접근이 좀 있었는데, 덕분에 다 잘 빠져나왔다.

그럼 대학교땐 뭘 하고 살았나. 요약하면 라크로스다. 거의 모든걸 포기했다. 교환학생, 학석사연계, 학점,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 다 포기했다. 고등학교때 가진 꿈이 뭐냐고? 난 고등학교 때부터 파쿠르를 즐기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태초의 움직임에 집중한 이 운동은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체육대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 종목을 역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

나는 과 동아리로 라크로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기는 딱히 없었고, 동아리 하나는 들어가는게 좋다 하여, 그 이야기를 하신 선배님의 동아리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 동아리는 학교 최초의 여자 운동동아리였다. 국가대표가 7명이나 있던 동아리의 훈련 강도는 꽤나 괜찮았다. 적당히 기진맥진했다. 주 2회 운동이었다. 적당히 하라는거 하고 출석 하며 지냈다. 하다보니 재미도 좀 붙었다.

하지만 2014년 2학기부터 주장을 맡게 된 이후 꽤나 많은 것들이 바꼈다. 가장 먼저, 파쿠르와 라크로스를 동시에 하면서 주장까지 맡았더니 몸에는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 신호는 2015년에 정강이에 피로골절이 발생하면서 나타났다. 정강이 중간에 대놓고 금이 갔다. 점프를 할 때마다 전기가 올라왔다. 라크로스 중에 삐었던 발목은 알고보니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2015년 U19 월드컵이 끝나고, 이어진 2학기를 마무리하자마자 연골편 제거수술을 받았다. 정강이는 1년이 지나도 붙질 않아서 결국 충격파를 동원해서 붙였다.

파쿠르를 그만뒀다. 라크로스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체대동아리의 마지막 체대생이었던 탓에, 라크로스를 포기하면 거기서 그 동아리는 끝이었다. 때문에 중간에 교환학생을 가보는 것도 알아서 포기했다. 중앙동아리로 인준해서 주장을 넘기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 하고싶은건 그 다음에 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체대동아리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중앙동아리가 따라올 수 없었고, 체대 후배를 모집하는데 더 집중하길 원했기 때문에 설득이 어려웠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체대 학생회에서 협의회 안내도 없이 자기들끼리 회의를 진행시켜, 체대생 비율에 관한 규칙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체대 동아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덕분에 비로소 준비하고 있던 인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다. 선배들을 설득하고, 여성체육 분야에 열정적이던 지도교수님에게 다시금 찾아가 중앙동아리가 될 동아리가 앞으로 여성체육 신장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장담하며 도움을 청해 기존 동아리방과 운동장소 대관을 지켜냈다. 한시라도 더 일찍 중앙동아리로 등록하기 위해 체대동아리를 자진 탈퇴했다.

난 사실 선배들이 설득되지 않던 그 시기에도 중앙동아리 인준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무더기로 졸업하는 바람에 이미 체대 선배층이 무너졌고, 다른 열악하지 않은 스포츠 종목의 동아리가 즐비한 상황에서 체대 후배 모집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중앙동아리로 옮기는게 동아리가 유지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경력자가 거의 없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이 친절한 동아리는 타과생들에게 더 인기가 많았다. 선배를 설득하는 일은, 내 졸업이 가까워질 수록 쉬워질걸 이미 알고 있었다.

중앙동아리로의 전환이 늦어진 만큼 나는 주장을 계속해야 했다. 2학년 2학기부터 2년 반을 주장직에 몸담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장기간 하고 있게 됐다. 중앙동아리 사회는 동아리방과 지원금, 연고전이나 아카라카 티켓같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공유해야 하는 탓에 신규 등록을 반기지 않았다. 신규등록 제출서류를 봤더니, 그냥 “등록하지마"로 읽혔다. 그리고 그 사회 내부는 완전 정치판이었다. 자기 동아리의 이익이 우선인 그런 정치판이다. 그들은 신규등록 절차에 각종 장벽을 쌓고, 자신들의 이익을 사수했다.

그 사회에 빠삭하고, 그런 정치판이 깨끗해지길 원하는 분들을 알게 되었다. 그저 활동을 활발히 했을 뿐, 연고전이나 아카라카조차 관심이 없던 우리 동아리는 깨끗했다. 선배들이 얼마나 활동을 열심히 해왔던지, 이미 우리는 전부터 유명했다. 그분들은 그런 우리 동아리가 중앙동아리로 전환하려 한다는걸 반겼다. 민감한 이슈들을 지속 트레킹하고, 동아리의 평판을 관리하고 인준 자료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난 그 도움을 얻어 민감한 이슈에 휘말리지 않도록 내부를 단속하거나, 휘말릴 수 있는 활동에 대한 니즈와 타협점을 찾는 일을 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신중해야 했다. 신규등록을 위해 동아리 평판을 관리해 가며 중앙동아리 회원 150명과 현임 회장 20명의 동의를 얻어내야 했고, 때로는 만연한 문제에 대해 눈감아야 했다. 친목 등 동아리 내정은 다른 운영진 분들께 대부분 맡겼다. 그분들까지 없었으면 아마 힘들었을거다.

나는 그런 몸에 맞지 않는 대외 정치질을 하며 탈출을 꿈꾸며 버텼다. 결국 2016년 9월 29일, 동아리연합회 정기회에서 일종의 디펜스 질의를 거쳐 압도적 찬성, 반대 0명으로 인준에 성공했다. 예상질문을 나름대로 생각해서 갔는데, 그 안에서 다 나왔다.

하지만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한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 동아리는 내가 처음으로 사람들과 교류다운 교류를 했던 곳 중 하나다. 그 사람들과의 공간을 무사히 지켜내고 다음으로 넘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는 성공했다. 이젠 더 능력있는 후배들이 동아리를 잘 이끄는 중이다.

회고록 - 7. 성인식

탈진

라크로스 동아리 주장을 하는 사이 기계공학 복수전공도 시작했다. 수업시간이 너무 좋았다. 밤새며 과제를 해도 행복했다. 동아리의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결국 2016년 2학기에 중앙동아리로 인준하는데 성공하자 마자 긴장이 풀려 몸이 무너졌다. 혈뇨를 보기 시작하더니, 신기능이 떨어졌다. 중도 휴학을 했다. 무너지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학교생활 내내 긴장 상태로 지내는 것도 모자라, 안그래도 늦게 시작한 복수전공을,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인해 초과학기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수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수학과 전공 역학수업과 설계를 동시에 들어야 하는 그런 식이었다. 그 와중에 그놈의 양심이 뭐라고, 족보를 보는 것은 스스로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주에 3일씩 밤을 새는건 기본이고, 5일 연속으로 잠을 못자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안 죽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결국 학점관리에 실패하여 학석사 연계과정도 잘렸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고, 중앙동아리 인준 성공으로 주장도 넘겨줄 수 있게 되면서 장기간의 집권(?)으로 인해 하나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동아리 업무를 문서화해서 일종의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주장을 넘겨줬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밤샘을 가능한 피했다.

데드캣 바운스

어차피 학석사 연계도 잘렸겠다, 기계공학과 수업들을 그저 온전히 즐겼다. 수치해석 수업을 통해 프로그래밍에 흥미가 붙었다. 그런데 라크로스 경력이 아주 짧은 사람이 다음 주장을 맡게 됐다. 그래서 미국의 라크로스 훈련 드릴 공개본을 수집한 후 라크로스 훈련 계획을 작성하는 웹앱을 만들기로 했다. 그 목표를 가지고 2017년 여름, 코딩야학 2기를 수료했다.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쿼리로 떡칠된 첫 작품이 탄생했다. 아 물론, 안쓴다. 그냥 재미로 만든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취미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중에 나에게 밥을 먹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혼자 계획표를 웹으로 작성해서 사용하기도 하면서, 소소한 프로젝트를 하며 실력을 갖춰나갔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 Exoskeleton 로봇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군사용 근력증강 로봇에 관심이 있었다. 일단 이걸 하려면 대학원 진학은 필수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대학원 생활을 모르므로, 한번 체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KIST 인턴 연구원 채용공고를 보고 콜드메일을 하나 보냈다. 이런걸 연구하고 싶은데, 뭘 준비해 갈까요? 하고. 그 메일을 본 한 박사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니 때가 되면 지원하라고 했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졸업 직전, 인턴 지원 대상 자격이 생겼을 때 연구소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기대에 부풀어 C언어도 미리 공부했다.

졸업 후 인턴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애석하게도, 내 연구 관심사와 관련없는 연구실에 채용되었다. 이름은 지능로봇연구단이지만, 연구실엔 로봇이 없었다. 그당시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연구실의 박사가 해외에 체류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관심있는 다른 박사가 데려갔던 것이다. 설명을 들으니 재미는 있어 보여서 그냥 입사했다. 연구활동을 체험하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좌절

결과는 대실패였다. 유저테스트를 하게 되었는데, 데이터 쿠킹을 유도했다. 정해진 논문의 내용에 들어갈 근거자료가 필요한 것이지, 테스트의 결과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박사들은 아웃라이어로 데이터를 제외한 후, 충분한 설명을 덧붙일 것이라 했지만, 이미 신뢰가 깨진 시점에서 난 시야가 좁아졌다. 내가 실행한 실험이고 내가 낸 통계이므로 책임은 나한테 있다. 나름의 발악으로, 실험설계를 바꾸고, 테스트 시나리오의 task를 바꾸고, 프로그램의 일부 알고리즘까지 개선해서 실제로 유의한 결과를 얻어내서 해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사들은 실제로 데이터를 제외하더라도 충분한 설명을 덧붙이긴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조작하지 않아도 밥벌이와 성과에 크게 문제는 없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혈기왕성한 나는, 사회초년생부터 불의라 생각하는 일에 타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타협은 동아리를 위해 했던걸 마지막으로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았다. 책임질게 없는 개인은 무서웠다. 자르든가!

19년 9월, 인턴 계약이 만료되어 연구소를 나왔다. 난 바로 연구의 꿈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리고 취업활동을 하려던 나에게 다시금 브레이크가 걸렸다. 요로결석이 생긴 것이다.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막연하게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은, 키를 어느 방향으로 둬야 하는지 모르던 참이었다.

갭이어

잠시 푹 쉬는 사이, 연구계에 대한 분노는 줄어들었고,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처럼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할 줄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을 나열했다.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취미로 하고 있던 개발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고작 만들 줄만 아는 나에겐 전공생들이 가진 것들이 없었다. 해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배우기로 했다. 내일배움카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아싸리 모의해커 취업반 과정을 신청했다.

코로나가 창궐했다. 딱 취업반이 시작되는 그 때. 그 시기, 2020년 2월이었다. 인턴을 하며 모아둔 돈을 갉아먹으며 해킹을 배우면서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입이 늘었다. 음력설을 지내기 위해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섰는데, 박쥐같이 말라 비틀어진 검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튀어나와 동생을 부여잡더니 다리를 타고 올라가 품에 안겼다.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눈과 코는 어디서 얻어맞아서 부어 있었고, 털도 듬성듬성했다. 뭐 어쩌나. 살려달라는데 살려야지. 데려와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자취방 주인도 예전부터 동물을 키워도 된다고 먼저 이야기했었다. 주인집 강아지가 너무 시끄러워서 일종의 민원방지책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 고양이는 검은 턱시도였는데, 목, 흉부, 복부, 뒷발에 흰 털이 나 있었다. 까치가 생각났다. 이름을 까치로 지었다. 공교롭게도 설연휴에 만났기 때문에 잘 지은게 되었다. 사실 강력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코로나로 할까도 했는데 주변의 만류로 포기했다.

병원비는 월에 50만원씩 날아갔다. 치료와 함께 예방접종들도 빠짐없이 했다. 좀 있으니 피부병이 옮았다. 수의사에게 사람도 치료받았다. 오해는 마라. 사람이 진료를 받은건 아니고, 그냥 고양이 피부병 샴푸를 사람이 써도 효과 있다는 꿀팁 정도 얻었다. 어느정도 건강해진 후 중성화 시술도 이어서 했다. 자연에서 도태된 고양이는 그렇게 이기적 유전자의 미래를 포기당했다. 도심의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시골이었다면 안했을거다. 미안하다. 수컷인데 아직도 애기같은 목소리로 운다. 내시를 만들어 버렸다.

야생 적응기

까치 설날에 찾아온 까치의 활약에 힘입어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결국 취업반 마무리 단계에서 보안계열 취업을 포기하고 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보안계열은 초봉이 KIST 인턴보다도 낮다. 하지만 본격적인 면접철 직전에 선수를 치고 입사제의가 온 극초기 스타트업에서는 KIST 인턴을 경력으로 보고 상향된 연봉을 제시했다. 고양이를 키우려면 집도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곳으로 구해야 하고, 사료, 모래 등 부가비용이 발생한다. 스타트업 조기취업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돌고 돌아 옳은 선택이 되었다. 극초기인 만큼, IR도 함께 다니면서 여러 모습들을 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대표님도 사업이 처음이었다. 첫 직원이라 여러모로 잘해줬다. 일은 너무 쉬웠다. 주로 기계공학과에서 배웠던 것들을 이용했다. CAD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적화하고, 3D프린터로 시제품을 출력하고 가공하는 것이 내 주업무였다. 그 외 IR자료 작성, 시장조사, 동영상 편집, 홈페이지 디자인, 개발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동아리 주장을 오래 하며 별의 별 일을 다 해봤기 때문에 엉성한 수준이더라도 내 선에서 다 처리할 수 있었다. 시제품의 구조나 기획 등이 정리되며 부품의 성능을 최적화할 회로개발자를 추가로 채용했고, 난 회로개발과, 대표님이 하시던 IR 발표, 정부지원사업 지원서 초안 작성, 세무, 회계를 제외한 모든 일을 했다. 그렇게 해도 하루에 4시간이면 내 일이 끝나버렸다. 주 업무인 시뮬레이션과 기구설계 부분에서 수학적 규칙을 찾으면 바로 코드를 작성해서 자동화해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는 바람에 다른 잡무에 할애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어났다. 지루하고 심심했다.

난 퇴근 후에 해킹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Capture The Flag(CTF) 형식의 가상 해킹게임을 플래이했다. 그러다가 Offensive Security사의 OSCP 자격증 과정을 알게 되었다. 유명 모의해커 자격증이었다. 땄냐고? 놉. 수업만 신나게 듣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는 바람에 취득은 못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9개월 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찰나, 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제 퇴근 후의 여유시간 따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난 진정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기로 결정하고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 고생길이 열렸다.

사이드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사이드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드는 사이드프로젝트이자 사이드비즈니스였다. 실제로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투자는 얼마나 받을 것인지, 지분과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지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투자는 가능한 최소로 받아 내부인의 지분을 높이고 최소 비용으로 빠르게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투자를 가능한 거하게 땡겨서 기업가치 높게 평가받고 수습은 이후에 하려는 요즘 스타트업들과는 좀 달랐다. 원격으로 일하면서 좀 더 정리된 방식으로 어떻게 일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우리 회사보다 훨씬 잘 굴러갔다. 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지만 사람들 간의 온도차, 책임의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쳐갔다. 사이드였기 때문에 과감히 그만뒀다. 라크로스 - 회사 - 사이드프로젝트 순으로 우선순위를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빠진 라크로스 일정으로 체력적 부담이 생기니 그 상황을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회고록 - 8. 정착

처음으로 소개한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이다. 난 AI 강화학습 에이전트를 이용한 주문집행 소프트웨어를 주 라인업으로 가진, AI Trading Solution 부서의 개발팀에 있다. 입사 당시엔 AXE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도끼 아니다. 현재 3년을 넘겼다.

내가 입사할 때 이 회사는 30명 규모의 회사였다. 잠시후, 소프트뱅크에서 대규모 투자가 들어왔다. 인원이 80명으로 급증했다. 물론 우리팀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규모를 유지중이다. 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기위해 팀이 신설되고 공격적인 채용이 진행됐던 것이다. 처음엔 기대했다. 그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우리팀은 나중에 이런걸 하고 있겠지. 물론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우리 팀은 그냥 평온하게 하던거 하고 있다. 회사는 다시 대박을 칠 무언가를 기다리며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

우리 팀은 팀의 제품을 증권사에 납품하는 형식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타 기술기업들이 의례 그렇게 실수하듯, “좋은거 만들어두면 쓰겠지"라는 마인드가 좀 있었다. 제품과 니즈는 충돌했고, 우리에겐 “이럴거면 왜 AI를 도입하려는거지?”하는 불만이 좀 있었다. 하지만, 을은 갑이 원하는걸 해줘야 하니까, 일단 들어줬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했다. 여기서 들이받았으면 제품은 영영 제자리걸음이었을 것이다. 강력한 성능의 못쓰는 물건으로.

제품은 현재 4.0버전까지 와 있다. 내가 입사할 당시는 1.0에서 2.0 버전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1.0의 성능에 만족한 고객사와 대형 프로젝트로 2.0을 기획하고 개발을 진행했다. 난 이 버전을 설치하고 세팅하는 시기에 입사했다. 해킹 공부로 얻은 인프라쪽 지식과 개발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입사할 수 있었다. 딱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보딩 시스템이 없는, 사수조차 없는 이 팀에서는, 프로그램이 뭘 하는 것인지 등 소개 문서 하나 없이 다짜고짜 일부 마이크로서비스의 코드를 분석하고 리펙터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난 트레이딩에 대해서는 겉핥기 식으로 잠시 주식투자를 해본게 다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뭘 하는지 이해하려니 막연하고 막막했다. 심지어 마이크로서비스 시스템은, 서비스의 목적을 더 알기 어렵게 만들었다.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설치 업무에 적응하는게 더 수월했다. 설치업무를 하면서, 시스템을 파악하여 코드베이스를 파악해나갔다.

2.0은 한가지 큰 과제가 있었다. 초대형이라는거다. B2B2C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최신 개발 트렌드와 기술스택도 대거 도입했다. 2021년이었던 당시에 이미 Rust를 도입했고, 펄서를 메시지큐로 도입하고, 쿠버네티스를 도입하고, IaC도 하겠다며 helm과 Terraform까지 이용했다. 그것도 증권사의 폐쇄망 Cloud에서! 천재들의 세계는 엄청나군! 난 그저 그걸 내것으로 흡수하고, 그 원대한 계획을 실제로 실현해내는데 집중했다. 2.0 막바지에 갔을 땐, 모르는건 많지만 겁먹진 않는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가장 비효율적인 곳에 들어왔기에 가능한 성장이였다. 이런 기회는 이제 주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회사는 더이상 이런 삽질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제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이다. 나 또한 이런 개고생을 경험할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 버틸 확률이 10%일 것이다. 만든 사람들도 나중에 다 퇴사했을 정도니까. 진짜 중간에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무사히 넘겼으니까 이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어려운게 문제가 아니다. 설치 마무리 후 장애로 인해 매일같이 오는 긴급전화와, 긴급 출장업무가 문제였다.

초기 B2B2C로 기획되었던 프로젝트는 시간이 지나며 B2B로 축소됐다. 동시작업 10000건 목표는 없던 일이 되었다. 10000건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은 B2B에서 그냥 돼지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먹이는 많이 먹는데 고기는 팔 곳이 없는 그런 돼지였다. 2.0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모두 퇴사했다. 충원은 이보다 덜했다. 프로젝트가 축소되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후 잠시 팀을 맡던 팀장도 퇴사했다. 유지보수하는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다. 여기저기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커다란 사이즈 만큼 버그도 많았다. 천재 개발자들이 만든 힙한 야심작은, 아무리 그들이 천재였어도 허점이 많았다. 당연하다. 버그 없는 프로그램은 없다. 매일 오전 카톡이 울리면 고객사 연락인가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서비스를 안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0의 주역들과 그 다음 팀장이 모두 퇴사하고, 팀장 제의를 강력히 거절했다. 동아리에서의 그 경험은 팀장직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다시는 그런거 안하기로 했다. 팀에서 조용히 계시던 시니어 개발자가 팀장이 되었다. 대신 나에게 많은 권한을 주셨다. 시니어 팀장님은 혼자 다른 언어를 쓰고 계셨기 때문이다. 당시 3.0 프로젝트가 진행중이었고, QA가 입사하며 버전 및 품질관리도 시작했다. 쓸데없는 중복을 버리고 안정성을 높이는게 3.0의 목표였다. 팀장님은 중복된 기능을 가진 세 개의 서비스를 통합했다. 3.0 프로젝트는 커졌다. 난 내가 담당하던 마이크로서비스도 완전 새로 개발했다. 그리고 아싸리 쓸데없는걸 다 들어내기로 했다. 인프라도 불필요한 것들을 다 날려버렸다. 이제 내가 아니어도 기본적인 설치나 디버깅 업무가 가능하게 되었다. 맞다. 제발 이 지옥같은 업무를 좀 분산시켜 달라는 아우성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새로 들어온 매우 협조적인 팀원이 간소화된 제품 설치 과정을 따라다니며 배우면서 설치 업무를 돕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3.0 버전으로 넘어가면서, 일에 여유가 좀 생겼다. 리서치팀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일 회사에 쌓이고 있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우리 팀의 모델 학습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에 사용하던 고가의 구매 데이터 형태로 변환하는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진행되면, 데이터 구매 비용 부담으로 인해 잠시 멈췄던 학습을 다시 재개할 수 있었고, 타 거래소로의 확장도 용이해질 것이었다. CTO님의 퇴사 전 인수인계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을 넘겨받았고, 무사히 개발해서 사용중이다.

시니어 팀장님이 이민을 가면서 퇴사하고, 잠시 팀장을 하다가 퇴사했던 팀장이 재입사했다.

다음은 4.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4.0의 목표는 코드의 가독성, 유지보수성이다. 여기에 모든 기능의 완전한 이중화까지 지원한다. 개발언어를 Rust로 통일하고, 중앙화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공통 라이브러리로 관리한다. 모노리포 구조로 말이다. 코딩컨벤션도 정해졌다.

그러던 중 또다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했다. 4.0 프로젝트 도중 DMA 프로토콜을 병행해서 개발해야 하게 되었다. 일정이 겹쳐서 끼어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난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었다. 하지만 대체가 없어서 재택근무로 전환해서 마지막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했다. 힘들긴 하다. 집에 갇혀서 일하는 느낌이다. 그 상태로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다. 근데 하지 않으면 일정을 맞출 수가 없다. 뭐, 언젠간 지나갈 일이다.

회고록 - 9. 라크로스

대학 졸업 후, 나에게 좌절을 선사했던 연구소의 생활은 득과 실이 확실했다. 라크로스 연습을 하기엔 최고였다. 야외 스쿼시장에서 월볼(벽에 공을 치며 던지고 받는 것)이 가능했고, 웨이트 시설도 공짜였다. 필드도 있었다. 동아리 인준이니 주장이니 하는 부담도 없었다. 그 시기에 실력이 많이 늘었다. 마치 밥먹고 약을 먹듯이 퇴근하면서 연습을 했다. 연구실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대학원생들이 고강도 크로스핏을 왜 많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2019 아시아 환태평양 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에 사는 두 선수와 함께했다. 전설적인 골리와 탑 레벨 수비수였다. 그리고 졸업 후부터 심심해서 다니던 토요라크로스의 모임장이자, 현재 서울진도스 팀의 시초가 된 사람과, 한국외대 여자팀을 창단하고, 호주에 유학까지 가서 라크로스 선진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을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그만두려 했던 라크로스는 그렇게 수명이 연장됐다. 오프데이 때 그들이 함께 이야기하던 비전인 “즐거운 라크로스”를 마지막으로 믿어보고 싶었다. 연구소를 다니며 자유인으로서 즐긴 라크로스 또한 생각보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제 즐길 수 있구나. 서울진도스 설립에 함께했다. 역시나 즐거웠다.

대학 생활을 통째로 앗아간 이 애증의 스포츠는 지금 삶에 있어 주를 차지했다. 난 회사에도 라크로스가 1순위라고 대놓고 밝혔다. 면접 자리에서 대표팀 일정으로 인해 휴가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고 허락까지 받아놓았다. 대신 이런 사례가 나쁜 사례가 아닌 좋은 선례로 남게 하고자 고생스러운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기한에 목숨걸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관성같은 것이었다. 대학생 때 라크로스를 하는 내내 책임자 자리에 있었다보니, 행동 하나 하나 함부로 하기 어려웠는데, 이게 습관이 되었다. 특히나 생소한 스포츠 특성 상, 내 행동이 라크로스를 하는 이들을 대표하게 되기 때문에, 틀린 것도 아니었다. 나를 비롯, 선배들이 나쁜 선례를 남기면 후배들은 라크로스에 열정적이었을 수록 사회에서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크로스가 아니였으면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늑장을 부리며 일하고, 고생길일 것이라는 팀내 SRE 역할을 자처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팀에서 대퇴사 바람이 불며 타 회사에서 오퍼레터를 받았을 때도 바로 이직했을 것이다. 대규모 트레픽과 SaaS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며, 파격적인 연봉인상을 얻어내며 말이다. 물론 오퍼레터보다는 조금 적지만, 회사에서는 이직하는 수준으로 연봉을 파격적으로 올려줬다.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서비스를 실제로 판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하고 안정화한 경험도 얻었고, 기술독재에 대한 경각심도 얻었다. 이곳은 당장 어렵더라도 언젠간 하는 만큼 대가를 얻는 곳이구나. 운좋게도 나름 좋은 선택이 되었다. 아, 물론 요즘은 좀 막나가고 있다.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풀린 정신으로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더더욱 제대로 쉬기로 했다.

2022년,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됐던 월드컵이 드디어 열렸다. 역대 최악이었다. 우리가 코로나를 핑계로 멈춰있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20점차 가까이 이기던 중국에게 조차 패배했다. 우리는 멈춰있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했다. 그와중에 난 허리에 갑자기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의무실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취 파스나 온찜질 이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디스크 파열일지도 모르는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앓다가 좋아졌다를 반복하면서 후회 가득한 대회를 치렀다. 귀국 후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디스크 파열은 아니였지만, 내 허리는 이미 한 곳이 작살난 채 오래되어 있었다. 그곳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작살날 것이라 했다. 이미 치료는 늦었고, 언제 은퇴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난 소속팀인 서울진도스에서 라크로스 인생 2막을 그저 즐겼다. 이미 대학교 졸업 이후부터는 플러스 알파를 지내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 어차피 마지막이다. 후회없이 즐기기로 했다.

서울진도스의 “즐거운 라크로스”라는 추상적인 비전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리고, 이곳엔 쓸 곳엔 쓰자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모였다. 이왕이면 더 좋은 구장을 빌리려 하고, 양질의 훈련을 추구하고, 코치도 모셨다. 코치들 또한 적은 사례비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쳤다. 코치의 비전은 “라크로스다운 라크로스”였다. 난 이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자칫 잘못하면 대학생활을 통째로 앗아간 라크로스를 버림과 동시에 라크로스를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살 뻔 했는데, 즐거운 라크로스를 경험한 덕에 그런 결말은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

2023년부터는 라크로스 선진국인 일본에서 매년 개최되는 오키나와 오픈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서울진도스는 한국에서 따라올 팀이 없게 되었다. 이후 모든 국내 리그를 우승하고 있다. 오키나와 오픈에 그저 참여하는게 아니라, 그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기 위해 그간의 대표팀 준비보다도 더한 열정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대회에서 사상 최고로 많이 늘었다. 아니 곧 은퇴할 사람이 아쉽게 왜이러나…

2024년 오키나와 오픈에서는 디펜스 주장을 하게 되었다. 다시는 하지 않기로 했을 터인 주장이었는데, 그냥 결정되어 통보되는 바람에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다. 내정을 다른 운영진에게 맡겼던, 성격에 맞지도 않는 바깥일이나 꾸역꾸역 하던 그런 주장 경험만 있었기 때문에 꽤나 막막했다. 사실 그런 주장 경험은 나에게 트라우마와 다를 바 없었다. 다행히도 함께 주장을 맡았던 두 명이 이 약점을 다 커버해 줬다. 주변에게 큰 기대치를 가지고 팀을 이끄는 성격을 가진 한 명은 팀의 동기 수준을 높게 가져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언변이 좋고 성격도 둥글둥글한 다른 한 명은, 갈등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잘 해결하고 각종 공지 내용도 유도리 있게 잘 작성했다. 팀원 간의 조화를 이끄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난 그런 능력들은 없었다. 장비 담당으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차를 끌고 장비를 운동 장소로 가져가는게 내 임무였다. 그리고 난 그런 단순하고 몸만 좀 고생하면 되는 역할이 참 좋았다. 난 타인에게 기대를 거는 타입도 아니다. 말을 조리있게 즉석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이 그나마 가능했으므로, 훈련이 끝나고 귀가하면 그날의 디펜스 훈련중 들었던 피드백을 요약해서 업로드하고, 꾸중을 잔뜩 들었던 디펜스 팀원들에게 그래도 잘한 것, 발전한 것이 있음을 기억케 해주기 위해 나름 생각나는 잘한 점들도 피드백에 추가했다.

2년간 오키나와 오픈에 참여하면서, 가장 큰 행복이 찾아왔다. 드디어 미래를 맡길 만한 골리 후배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대회에선 불시에 당할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구안과 눈과 손의 협응이 좋고 안정적이며 힘도 좋은 골리가 나타났다. 특유의 안정성을 무기로 미래에 강력한 골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대회에선 체구가 작고 힘은 좀 떨어지지만, 승부욕이 강하고 이에 맞게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선수가 나타났다. 노력은 가장 강력한 재능이다. 그리고 다리에 시퍼렇게 든 멍을 보고도 그저 공 하나 막았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후에 강력한 멘탈을 장착한 선수가 될 것이다. 이 친구는 지금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서 그곳의 팀에 들어가 거의 매일 연습을 하고 있다. 강력한 기본기와 멘탈을 가지고 돌아올 그날이 기대된다.

그리고 지금은 2025년 아시아-환태평양 권역에서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겨루는 퀄리파이어 대회를 준비중이다. 난 지금 허리 디스크 파열로 인해 장기간 휴식중이다.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 출전권 따야하는데. 하지만 이번에 신우신염을 얻어맞고, 폐에 물이 차고,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집중해서 휴식 기간을 빠르고 밀도 높게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은 완전히 마음을 놓고 쉬고 있다. 그게 제일 빠른 길이다. 버텨라.

디스크가 호전되며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병치레로 무너지기 전까지의 기간 사이에, 이곳에서 또 한 명의 골리를 만났다. 골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났다. 공을 던지는 것만 봐도 몸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눈에 바로 보였다. 빠르게 성장할 것임은 틀림없다. 운동 능력은 문제가 없고,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고 머리를 비우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될 것이다. 과거 힘만 넘쳐서 튀어다니던 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골리 지망자가 나타났다. 아직 장비가 없어서, 수비수 훈련을 하면서 훈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그 습관 자체가 바로 미래의 성장을 암시한다. 기록은 누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 또한 과거 훈련 내용과, 그날의 멘탈 등을 기록한 노트가 있다.